1991년 7월 1일 월요일 흐리거나 비 2258
상병으로써의 공식적인 첫날!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다.
농구! 중대 주종목이 언제부터인가 축구보다는 농구 쪽으로 돌아섰다. 아무래도 복작되는 연병장보다는 공간이 작아도 되는 농구가 인기 종목이 된 듯하다. 과격한 플레이로 중대 농구계에서 축출될 위기다. 짬으로 밀어붙였다. 부당하다는 무수한 항의! 계급이 깡패였다.
뜻밖의 희소식!!! 군생활 열심히 했다고 4기에게 4박 5일 포상휴가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퇴근 점호 때 중대장의 발표! 중대가 쪼개지는 가운데 중심 잘 잡아 주었다고... 조만간 전출을 앞둔 중대장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나는 좀 묻어가는 느낌이기는 하다. 그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매우 기쁜 일이다. 퇴근하며 호준, 해민과 가볍게 한 잔! 이래저래 축하도 하면서... 재미있는 하루였다.
1991년 7월 2일 화요일 맑음 2020
시간은 스스로 알아서 갈 길을 가고 있다. 늘 내 기대보다 느린 게 문제지만...
오전에는 예비군 교장에서 교육을 실시했다. 중식 후에는 중대 막사에서 교육 실시! 그리고 퇴근 전에는 농구하고 족구 하고... 변함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에 적응되어 있다. 눈을 돌려 보면 나뭇잎도 녹색이고, 우리들이 입고 있는 군복도 녹색이고... 그래서 마치 흑백처럼 보이는 부대의 모습!
한 때 풍부했던 감성마저 이제는 다 무뎌지고 그저 삭막한 군인으로만 남아 있구나. 네가 무슨 군인이냐? 방위지!라고 한다면 따로 할 말은 없고 그저 니 똥 굵다.
1991년 7월 3일 수요일 맑음 2105
여름 날씨가 무더운 것은 당연하겠지만 오늘은 참으로 무더웠다. 이제부터 버텨 나가야 할 날씨구나.
1991년 7월 4일 목요일 맑음 2014
부대가 쪼개지던 없어지던 훈련은 계속된다.
진지공사와 유격 이후 한동안 평화롭게 부대에서만 머물렀는데, 드디어 훈련이 시작된다. 무엇인지 알겠지만 생소한 훈련이다.
전/투/수/영/
참신하구나. 이 더위에 딱 어울리는 훈련이 아닐 수 없다. 수영을 못하지만 크게 상관없다고 한다. 수영도 가르쳐 준단다. 과연 상관없을는지...
1991년 7월 5일 금요일 맑음 2116
장마라는데 비는 오지 않고 있다.
요즘의 일상은 단순하지만 재미있다. 결국 상병을 달아야 진짜 고참이 되는 것이었다. 작대기 하나가 더 추가된 것에 불과하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어쨌든 버텨온 15개월의 시간을 이제야 인정받는 것이다.
진지 공사도 마치고, 유격까지 마쳤으니 제대 전까지 큰 훈련은 이제 다 마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투수영! 이 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전에 없던 훈련이다. 있었다고 해도 여름 맞춤 훈련이라 경험해보지 못한 병사들도 많았을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국군의 날 행사 준비로 진행할 수 없었고... 굳이 비교하자면 혹한기의 대척점에 서있는 훈련이다. 어쨌든 전술 훈련인데 어떨지 모르겠다.
소대장의 전언에 따르면 휴양에 가깝다는데 그럴 바에는 그냥 집에서 쉬게 해 주는 건 어떨지?? 하기는 10월 200킬로 행군 & 진지공사까지 여전히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어떤 훈련이라도 행군으로 시작해서 행군으로 끝내야 하는 게 보병의 숙명이다. 이 더위에 행군을 할 것을 생각하니 갑갑하다. 훈련지가 가깝던 멀던 최소한 50킬로 행군은 하게 될 테니까... 16개월 차나 되었지만 땅개에게 여전히 행군은 참 싫은 훈련이다. 늘 그래왔듯이 미리 염려하지는 않기로 한다. 닥치면 또 다 하게 된다.
그때는 그 때고, 적어도 오늘은 그저 교육계획표에 따라 하루를 보냈다. 더위를 피하고 잘 버티는 게 최상의 과제가 되는 요즘이다. 섣불리 햇빛 아래 뛰어다니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중선인 해민의 역할이 중요하기도 하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도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그저 아이들과 말장난이나 하면서 시간 보내는게 일과가 되어 버렸다.
어느새 우리 위의 고참으로는 딱 두 기수만 남았다. 사실상 폐인 취급이나 다름없으니 실무적으로는 4기가 최고참이 된 것이다. 2기는 갈참으로 조만간 제대를 앞두고 있다. 불운이라면 전투수영까지는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3기는 현재 말년 휴가 중이다. 제대일을 생각하면 조금 이른 감이 없지는 않지만 역시 전투수영 훈련에 참여해야 하니 이르게 휴가를 떠났다. 그들이 돌아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포상휴가를 다녀오고 전투수영을 다녀오면 우리도 말년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결국 7월의 중대 선임 기수로써, 특히 중선인 해민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우리의 기치는 '모두가 즐겁게'이다. 큰 소리가 전혀 안 날 수는 없겠지만 날도 더운데 서로 간에 즐겁게 지내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단언컨대 우리는 고참으로서 집합을 걸어본 적도 없고 털끝 하나 손을 댄 적도 없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리는 그랬다. 적어도 현재 중대원들에게 물어보면 그런 적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욕설조차도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까지는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 역시 고참 입장과 쫄병들 입장은 다르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수도 있겠다.
요즘 같아서는 그냥 이대로 머물렀으면 싶기도 하다. 아무 걱정 없이 지시받은 일이나 하며 더러 욕을 먹기도 하지만 그냥 무심하게 지낼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제대 날짜를 헤아린다. 이기적이고 이중인격적이다. 역시 군대의 최고참은 참 맛깔난 보직이기는 하다.
하루가 또 지나갔다. 좀 더 지성인인 채 살아갈 수 있기를 노력해 보자. 오늘부로 85일 남았다. 여전히 길다면 길구나~~
1991년 7월 6일 토요일 맑음 2119
좆같은 군대 이야기 추가!!
퇴근하여 집에 도착한 지 1시간 정도 되었을 때 인사병에게서 전화가 왔다. 휴가 취소란다. 천신만고 끝에 챙긴 포상휴가가 '취소'라는 한 마디로 날아갔다. 사유는? 모른다. 언제 다시? 모른다. 뭐 급한 상황이 생겼나? 그저 높은 분들의 결정이란다. 까라면 까야지.
"이 상병님, 월요일 출근해 주세요"
"알았다. 수고해!!"
아무 죄 없는 인사병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명령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호준과 통화하였지만 다를 거 없는 분노 반, 포기 반의 상황이었다.
생각할수록 분한 마음이다. 시키는 것은 무조건 다 하라고 강요하면서 휴가나 정비는 줄이고 미루고 취소하기도 한다. 무언가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나중에 소원수리서에 꼭 긁고 나가겠어. 짜증 날 정도로 약 오르지만 어쩌겠어? 어쨌든 여기는 군대이니 그저 시키는 대로, 벌어지는 대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 파업을 할 수도 없고...
C8!! 욕이나 한 마디 던지고는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 낫다. 그러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역시 답은 제대 밖에 없구나. 그러고 나서는 난 이곳에 대해 다시는 생각하지 않겠다.
어휴! 으휴!! 에휴!!!
1991년 7월 7일 일요일 비 2154
지난밤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여전히 약 오름 모드이다. 왜? 왜?? 도대체 왜??? 그뿐이다.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따질 곳도 없다. 고스란히 지시에 따를 뿐이다. 창의성과 나의 주장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조용하게 음악이나 들으면서 책이나 읽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어제 저녁의 약속도 지워 버렸다. 고교 동기들과의 술약속이었지만 도저히 나갈 마음이 들지 않아서 정말 미안하지만 지워 버렸다. 무책임한 건가?
앞으로 군복도 한 열두어 번 정도만 더 다리면 제대겠구나. 그거면 됐다. 힘내라!
1991년 7월 8일 월요일 흐리다가 갬 2127
중대장은 뒤를 조심하도록...
출근해서 만난 중대장은 미안하게 되었다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이곳에서는 이유를 알고자 하는 행위 자체가 사치스러운 일이다. 이미 상황 종료이니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기로 한다. 출근길 수송버스를 타며 이미 잊어버렸다.
준비된 교육계획에 따른 하루였다. 어차피 큰 훈련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니 일을 크게 벌이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일과는 더위 피하기! 휴가 취소된 상황을 아는 애들이 괜히 눈치를 본다. 나로서는 일부러 무심한 척 오히려 더 장난치고 웃고 떠들고... 그렇게 하루 일과를 보냈다. 문득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지만 적어도 애들 탓은 아니니까...
괜히 "나 없는 동안 대장 노릇할 거 생각하고 좋았지?" 라며 영재와 인해에게 시비를 털었다. 물론 영재는 정색하고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인해는 아쉽다고... 으하하~~ 덕분에 좀 더 빨리 유쾌해질 수 있었다.
1991년 7월 13일 토요일 맑음 2325
그냥 툴툴거리면서 보낸 한 주였다.
화요일 밤에는 야간 전술 훈련이 있었다. 우리도 우리지만 말년의 중대장은 무언가 나사가 빠진 느낌이었다. 마치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별로 뛰어다니는 일 없이 지키고 앉아 있으려고만 했다. 덕분에 편했다.
나머지 날들은 언제나 똑같은 군인으로서의 일과! 무언가 변화가 있었으면 싶으면서도 실제 변화가 생기면 싫은 그런 이율배반적인 한 주였다.
툴툴거림의 원인이었던 중대장은 오늘부로 떠났다. 중대장의 이취임식이 있었다. 전임 중대장은 큰 키의 최양락 같은 느낌이었는데, 신임 중대장은 누가 봐도 제대로 군인이다.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가 장난 아닌 느낌이다.
다음 한 주는 전투수영! 다시 1주일 동안 퇴근 없이 야전에서의 숙영이다. 아마도 이젠 정말 마지막 훈련 아닐까?
1991년 7월 21일 일요일 비, 엄청나게 많은 비 2100
또 하나의 훈련을 마쳤다.
훈련 하나를 마치면서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이번 훈련이 마지막이겠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나 이번은 진짜일 것 같다. 물론 전투수영처럼 갑자기 등장하는 훈련도 있지만 적어도 현재의 일정으로는 제대하는 날까지 일주일 이상 퇴근 못하고 숙영을 해야 하는 훈련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소대 단위로 하나의 텐트에서 함께 하는 단체 숙영은 처음이었다. 늘 직접 A형 혹은 D형 텐트를 치고는 두 세명이 짝지어 숙영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미리 설치 완료된 대형 천막에 바로 입성했다. 물론 누군가의 노고는 있었겠지만... 추계 진지공사(&행군)가 가장 문제이겠지만 9월에 할리는 없다. 춘계는 사정에 따라 4월 혹은 5월, 유동적이지만 가을은 늘 10월이다. 9월은 아직 덥고, 11월은 이미 겨울이고... 덕분에 단축혜택을 못 받는 동기라면 혹시라도 훈련지에서 제대하는 일이 벌어질는지도... 적어도 우리 중대의 동기들은 9.28에 함께 부대문을 나설 테니 그럴 일은 없겠다.
전투 수영은 훈련이지만 한편으로는 휴양 같은 면도 있었다. 훈련의 목적은 분명히 전투 시 도강을 대비해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더욱 잘하게, 못하는 사람은 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었다. 수영 능력 정도에 따라 나누어 수영 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흐르는 강물에서 그 정도의 연습으로 될 일은 아니었다. 직접적인 수영이라기보다는 군장비를 이용하여 어떻게 도강할 수 있는지가 주된 교육 내용이었다. 그러고나면 모두에게 평안한 시간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집합 따위는 없었다.
상황은 역시 행군에 있었다. 기억 속의 3대 행군! 신병 때 200킬로 행군하며 발톱 다 빠진 것, 혹한기 때 영하 25℃ 에서의 물도 마시지 못한 야간 행군, 유격 때의 맛이 간 행군! 그리고 어젯밤 폭우 속 야간 행군이 추가되어 4대 행군의 추억이 완성되었다. 일주일간 그렇게 좋던 날씨가 금요일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행군 출발을 하자 말 그대로 장대비로 변했다. 그러더니 정말 밤새도록 내렸다. 물 먹은 군장과 군복! 그야말로 무게에 무게를 더했다.
출발 전부터 각오를 다진다. 모두 즐거웠던 일주일이었지만 마지막은 정신을 제대로 차려야 한다. 어차피 걸어서 부대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퇴근도 할 수 없다. 소대원들을 점검한다. 출발 직전 마지막 점호를 위해 모두가 정열 중인데 후배이자 아들인 용우가 매우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열을 이탈하면 안 되는 상황인데 수통을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순간 욱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 말하지 않고 내 수통과 교환해 주고 난 물을 채우러 취사장을 다녀온다. 소대 선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취사장을 다녀오니 6기 신병 녀석이 또 수통이 비어 있다고 한다. 출발 임박해서 환장할 노릇이다. 생각해 보면 신병이라서 마음대로 이동할 수도 없고 눈치 보느라 수통을 채울 시간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내가 소대원 하나를 챙겨주는 것을 보고 용기 내서 말했으리라! 그래, 고참은 일단 본인 기준으로 생각하기는 한다.
"나는 했는데 너는 왜 못했어?"
"내가 이거 하는 동안 너는 아무거도 안 했어?"
"뭐 하냐?"
고참은 그렇게 쉽게 말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행군 전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이 수통이다. 특히 이등병들에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통 채우라고 몇 번을 말했건만... 이번에는 제대로 폭발이다. 영재에게도 모처럼 정색을 한다. 아들들 제대로 안 챙기냐고... 원래 신병 기간 동안은 소대, 분대 상관없이 아버지들이 챙긴다. 순식간에 소대 분위기가 박살 난다. 아차 싶다. 더군다나 이제는 출발 임박이다. 어쩔 수 없이 매고 있던 M60을 인해에게 넘기고 다시 수통을 챙겨 취사장을 다녀온다. 취사장도 한참 정리 중이지만 형일이 "또요?" 라며 큭큭대면서 수통을 채워 준다. 나의 울그락 불그락한 표정을 본 것이다. 신병에게 수통을 전달한다. 주눅이 들어 있다. 내가 다녀온 사이 이미 고참들에게 엄청 닦였을 것이다. 나는 정신 차리고 잘 버텨야 한다고 토닥거린다. 지금은 지랄발광보다 탈 없이, 낙오 없이 부대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대 복귀 후 용우가 말하기를 그 상황에서 내가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시커먼 몰골로 군장 위에 M60까지 얹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눈앞에 서있는 고참! 누가 봐도 화난 표정과 말투!! 입대 후 처음 보는 분노한 모습에 복귀 후 몇 대 맞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내가 언제 집합을 건 적이 있다고... 결코 집합이나 구타는 없었다. 심지어는 욕도 한 마디 안 했거늘... 그래, 솔직히 말한다. 화가 난 것은 맞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 말 없이 표정으로 압박하는 고참이 더 공포스러울 수는 있었겠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무서웠다니 미안하다. 용우도 그렇게 느낀 정도였으니 자대배치받은 지 보름 된 신병은 오죽했을까?
출발! 야간 행군, 거기에 폭우라니 위험 요소가 가득하다. 아니나 다를까? 장대비는 시야를 가리고 몸은 계속 무거워진다. 워커는 진짜 제대로 물먹은 군화가 되어 걸음을 더욱 지치게 한다. 이 놈의 워커는 물을 먹을 줄만 알지 뱉어 낼 줄은 모른다. 게다가 깔창마저 물을 먹으니 밑창의 못이 뚫고 올라와 발바닥을 찔러 댄다.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몇 시간은 행군한 듯하다. 문득 작년 여름 폭우 속에서 밤새도록 수행했던 왕숙천 제방 쌓기 작전이 생각난다. 1년 만의 비와의 데자뷔인가? 하기는 어떤 날씨라도 인상적이겠지.
오늘 밤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지치지는 않는 느낌이다.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난 유격처럼 바닥을 치는 느낌은 아니다. 덕분에 2시간 연속으로 M60을 매고 행군을 할 수도 있을 정도다. 사실 이것은 정말 지랄 맞은 경험이다. 어느 누가 맨 정신으로 이 엄청난 비를 맞으며 밤새워 길을 걷겠는가? 판초우의? 개나 줘버리렴. 더워 죽는다. 내적으로는 걸을수록 에너지가 더욱 충전되는 느낌이다. 정말 내가 미쳐가는구나 싶다. 마지막 훈련이라 생각해서이기도 하고 소선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기도 한 듯하다. 신병들이나 이등병들이 지치지는 않는지 자꾸 살피게 된다. 사실 내 한 몸 챙기기도 힘든 상황에서 이런 참견이 쉬운 것만은 아니지만 결국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구나 싶다.
한 명의 낙오라도 전체 분대, 소대 그리고 중대의 부담이 된다. 그러기에 미리 조금씩 모질게 구는 것이 서로 간에 도움이 된다. 원초적으로 접근하자면 "죽을래" 또는 "복귀해서 보자" 라며 말로 조지거나 철모를 갈기기도 한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보면 정말 극한의 상태가 되면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되기도 한다. 철모의 충격조차 제대로 인지가 안 되는 지경이다. 용우는 그래도 지난번 유격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그럭저럭 버티는 중이다. 군장보다도 작아 보이는 체구가 안타깝다. 예상했지만 폭탄은 6기 신병! 제대로 버벅거린다. 힘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버텨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군생활 이제 시작하는데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그래야 본인이 편해진다. 말 그대로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며 그렇게 질질 끌다시피 데리고 간다. 결국은 녀석의 아버지인 상혁이 신병 군장을 들쳐 맨다. 책임감의 발로!
익숙한 부대 근방의 진접, 오남리를 관통하는 행군로이다. 곧장 가면 1시간이면 도달할 거리지만 돌고 돌아 밤을 채운다. 도착 목표 시간은 0600! 어쨌든 그 시간을 맞춰야 한다. 그런 시간을 다 계산해서 설정한 행군로이지만 빗길이기에 지체되기도 한다. 급속 행군이 전파되고 상황은 모두에게 좀 더 힘들어진다. 다행히 도착 시간은 맞출 수 있겠다. 날은 이미 어스름 밝아오고 있다. 어차피 비 오고 흐린 날씨라 해가 뜨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둠은 지나가고 다시 아침이 온다. 낙오 없이 완주했으니 되었다. 두고 볼 일 따위는 없다. 발바닥과 다리에는 통증이 올라오고 사타구니는 쓰라렸지만 체력적으로는 오히려 가뿐한 느낌이었다.
샤워를 하고 정비를 했다. 밤새도록 비 맞은 총기류들을 그대로 두고 퇴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힘들지만 지금 반드시 정비를 해놓아야만 큰일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은 죽었다 깨어나도 퇴근할 것이니 모두가 최선을 다해 버텼다. 마침내 정오가 되자 일주일 동안 관물대에 걸려 있던 사복으로 갈아입고 퇴근했다.
토요일 오후부터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일요일의 같은 시간이었다. 24시간을 쉼 없이 잔 것이다. 눈을 떴을 때 여전히 내리고 있는 비를 보며 잠시 토요일로 착각하기도 했다. 아닌 척했지만 제법 지쳤었던 것 같다.
이제는 정말 끝이려나. 정비받고, 휴가 받고 그러다 보면 이제는 끝이려나. 마무리를 꿈꿔 봐도 되려나. 그러나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제대가 그리 쉽게 다가올 리가 없지.
어머니께서 나의 군복을 다려 주셨다. 감사합니다.
1991년 7월 24일 수요일 비 2640
보통은 훈련 후 바로 자가 정비가 주어지는데 이번에는 월요일 일단 출근했고, 어제부터 사흘 간의 정비가 주어졌다.
그 하루의 출근길에 깜박하고 집에 두고 온 출입증 때문에 군기 단속에 걸렸다. 정말 내 기억에 출입증 없이 출근한 것은 딱 두 번인데, 한 번은 자발적 신고를 하여 연병장 뺑뺑이로 때웠고, 마침 나머지 한 번을 걸렸다. 흔하지 않은 군기 단속인데 걸릴 운이었나보다. 말년에 군기교육대 함 가보는 건가? 그래 이런저런 경험 다 해보는 거지. 젠장!!
이제 하나씩 제대를 하고 있다. 남는 것은? 억울한 것은? 결국 늦게 들어간 녀석들!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 세월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수고했다. 나라 지키느라...
1991년 7월 25일 목요일 비 2016
며칠째 비가 내린다. 장마라고 하면서도 비가 안 오더니...
사흘 간의 정비를 마치고 내일부터 다시 출근 모드다. 솔직히 요즘 같으면 군생활 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말뚝 박을 일은 당연히 없다.
두 달 남았구나. 적극적으로 잘 버텨보자!
1991년 7월 30일 화요일 맑음 2035
어제의 과음이 오늘의 탈을 가져왔다.
취소되었던 포상휴가가 주어졌다. 오늘부터 4박 5일! 다음 주 월요일 출근이다. 그럼 8월인 것이다. 정말 계획이라는 것은 세울 틈도 없이 막무가내이다. 왜인지도 모르게 취소된 것처럼 왜인지도 모르게 휴가 명령이 내려왔다. 어차피 출퇴근하는 몸이니 딱히 휴가를 위해 준비할 것은 없지만 이런 기분 좋은 놀라움은 대환영이다. 결과적으로는 타이밍이 문제였던 것 같다. 중선 기수가 갑자기 중선을 맡은 달 중간에 포상휴가를 가는 것은 애매한 일이기는 했다.
덕분에 우리의 중대 선임도 어제부로 5기에게 넘겼고,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동기들과 임무 완수를 축하하며 마셨다. 술이 절로 들어갔다. 선임 기수마저 넘겼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정말 말년이라는 의미니까...
하루 종일 행복한 숙취였다.
1991년 7월 31일 수요일 흐림 2125
이제 정말 딱 2개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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