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6월 1일 토요일 구름 조금 2350
무사히 한 주를 보내고 맞이하는 주말은 일상의 휴식이고 축복이기에 매우 감사하다.
다음 주는 부담스러운 한 주가 될 것이다. 예상하고 예정되어 있던 데로 6월이 시작되자마자 유/격/이 실시된다. 피할 수 없으니 잘 즐기도록 해보자.
저녁에는 호준이와 롯데월드에서 영화를 봤다. <젊은 날의 초상> 좋은 영화였다. 누구에게나 방황의 시절은 있겠지만 어떻게 용기 있게 대처해나가는가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다만 여전히 늘 기회가 생긴다면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두고 보자!
1991년 6월 2일 일요일 흐림 2005
일주일 간 유격! 화생방 & 행군 포함!! 다행인지 아닌지 출퇴근한다.
어차피 몸으로 때워야하고 먼지 속에서 굴러야 하는데 당연히 힘든 것은 받아들이겠지만 날씨나 좀 덜 더웠으면 하는 것이 작은 희망사항이다. C8! C8!! 군복을 다리면서 마음을 다잡아 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길 것!
1991년 6월 3일 월요일 아침에 비 오고 개기 시작 2045
단언코 군인에게 훈련 중 백미는 유격이 아닌가 싶다.
4월 행군 & 진지공사를 마치고, 조금은 평화로웠던 가정의 달 5월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훈련! 오랜만에 굴렀더니 제법 매운맛이다. 간만의 유격 PT는 새삼스러웠다. 연병장에 대대 전 장병들이 모여서 1번 높이 뛰기부터 하는 모습은 장관이었으리라.
PT를 할 때마다 늘 고통의 끝을 맛보고, 그놈의 마지막 반복 구호 생략은 그렇게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이며, 유격 시작 전부터 고참들이 눈을 부라리며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해도 늘 시험에 드는 인간은 발생한다.
어쨌든 1700에는 퇴근이니까... 오지게 버텨본다. 누가 이기는지...
1991년 6월 4일 화요일 구름 조금 2128
지나 버린 시간은 잊기로 하자. 이미 잊었다.
그러나 몸 속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쑤시고 저리고 아프고... 그래도 제법 잘 버티고 있다. 사실 머릿속은 잘 안 돌아가는 느낌이기는 하지만 몸은 따라가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
조교들은 어쩜 그렇게 온몸 비틀기와 쪼그려 앉아 뛰며 돌기를 사랑하는지...
1991년 6월 5일 수요일 구름 약간 2005
반 타작! 잘 버텼다.
몸이 힘들어지면 짜증도 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제는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고참이 되고 보니... 성근에게 한 소리 한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고참의 심통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도 않고 그저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쪽팔리게스리...
우리 소대의 11기 한 녀석이 화장실에 숨는 사건이 벌어졌다. 유격 전 점호를 대충 실시하는 것을 이용해서 화장실에 짱 박혔던 것이다. 중식 후 갑자기 인원 점검을 하는데 인원이 모자랐고 중대는 발칵 뒤집어졌다. 결국 발각되어 끌려 나오는 녀석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어 있었다.
중대장부터 소대장을 거쳐 고참들에게 이르기까지 온갖 욕설이 난무하고 결국은 "유격 끝나고 보자" 로 일단 종결되었다. 녀석만의 문제가 아닌 11기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그놈의 연대책임!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 짱박혀 있을 생각을 했을까? 신선하게 미친 새끼 같으니...
유/격/ 힘들지.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기도 하지. 그런데 그걸 실제 행동으로 옮겨버리면 너무 쪽팔리잖아. 하기는 운이 좋았으면 안 걸리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역시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군기교육대라도 가게 되려나... 요즘은 직접 체벌보다는 군기를 보내는 경우가 많으니... 유격보다 더 만신창이가 될 텐데... 그것보다 더한 고참에게 찍힘과 후임에게 쪽팔림은 제대할 때까지 영원할 텐데...
잊어버리자! 부대 내에서의 일은 집에 와서는 잊자. 사실 낮과 밤이 너무 극단적이다 보니 좀 그렇기는 하다. 하루 종일 조교에게 시달리며 극한의 몸부림을 하고 C8 거리다가, 문득 저녁이 되어 사복을 입은 채로 잠실에 내려서면 말 그대로 인지의 부조화가 온다.
미친 척하고 잠실역 한 복판에서 "오늘 유격 뛰고 왔어"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 진다. 유격은 그냥 부대 내에 머물면서 출퇴근 없이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족들에게 티를 안 내고 싶은데 도저히 이 피로감과 통증을 감출 길이 없다. 접질려서 파스를 찾는 모습을 보며 또 어머니의 걱정이 한가득이다.
1991년 6월 6일 목요일 맑음 2030
지난 사흘동안 하늘이 많이 도와주었다.
고맙게도 날씨가 덥지 않았다. 덕분에 힘들 수밖에 없는 유격이지만 조금은 가뿐해졌다. 18개월 동안 경험하는 여러 훈련 중의 3 대장인 진지공사(행군), 혹한기 그리고 유격! 잘 버텼다.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해 본다. 큰 훈련으로는 유격이 마지막일 것 같다. 그렇다고 설레발은 치지 말기로 하자.
내일은 유격의 마무리, 야간 행군 50킬로가 예정되어 있으니 그것까지 잘 치러내고... 많이 지치기는 했다.
1991년 6월 8일 토요일 맑음 2020
모를 일이다. 앞으로 남은 군생활동안 어젯밤과 같은 행군이 또 있을지...
결론적으로 어젯밤의 행군은 유난히 힘들었다. 신병 때 200킬로 행군 이후 기억할만한 행군이었다. 영재와 인해뿐만 아니라 효진, 영길, 동원 그리고 훈근까지 모든 분대원에게 무척 고맙고 미안하다. 일주일 간의 유격 후 실시된 행군은 이상하게 출발 때부터 에너지가 워낙 바닥이었다. 훈련 마지막 날은 누구나 체력적으로 최저점이기는 하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심한 적은 없었는데... 무언가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복서마냥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모처럼 간만에 이 악물고 버틴 행군이었다.
수요일 유격 중에 발목이 좀 접찔렸는데, 그 부분의 통증이 행군을 할수록 자극이 심해져 갔다. 아예 부러졌거나 퉁퉁 부어오르기라도 했다면 다른 생각도 해보았겠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통증이었기에 열외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지속적인 통증에 신경을 쓰다 보니 안 그래도 힘든 상태에서 좀 빨리 지친 것 같다.
M60을 메고 가는 일은 고참, 쫄병할 것 없이 공평하게 나눠져야 할 일이기에 순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결국 발목 통증으로 인하여 순번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그 책임감 많은 영재가 더 많은 고생을 했다. 내가 책임질 부분을 분대원들에게 전하지 않고 본인이 다 짊어졌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걍 네가 내 고참해라!
게다가 주간에 실시된 화생방으로 최악을 더했다. 유격의 꽃이라는 화생방! 간만에 제대로 매운맛!! 부대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화생방 훈련장은 어쩐지 으슥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더군다나 가스실은 무슨 사형장 같이 생겨서는.. 화생방은 힘들다기보다는 고통스러운 기억이 된다. 어쨌든 끝났으니 되었다. 내 생에 또 가스 마실 일은 없겠지.
어젯밤 이맘때 나는 24시간 후의 지금을 상상했다. 결국 시간은 흘러가고... 답답하기만 하고 고생스러움만 느끼던 시간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면에서 이제는 부대 출근을 기다린다. 그래야 빨리 제대하지.
난 지금 되게 행복하다.
1991년 6월 9일 일요일 비 2120
서울이 아닌 지역은 비가 제법 많이 내린 모양이다.
그저 종일 누워서 유격의 피곤함을 달래는 하루였다. 말년 하사 경훈이 집에 왔다. 제대를 손꼽고 있다. 다음 한 주도 잘 버티자.
1991년 6월 10일 월요일 흐림 2059
승단 시험! 예정되어 있던 기습이었다.
사실 이 짬까지 승단 시험을 봐야 하는 게 쪽팔리기도 하지만, 나름 꾸준히 연습해 왔고 승단 시험을 치렀다. 그래도 흐린 날씨 덕분에 맨발로 선 연병장이 그다지 뜨겁지는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동안 소문이었던 이야기가 사실로 확정이 되었다. 물론 이미 사실로 진화하고 있었지만... 사단 편제가 개편되어 포병 연대가 창설되고 205 연대의 각 중대에서 일부 인원들이 차출될 것이다. 7월 1일부로 그렇게 개편이 된다고 한다. 중대에서 한 10여 명 정도는 이동될 것 같다. 동기 중에는 형호가 차출될 것 같다. 우리 분대에서도 2명이나 빠져나갈 것 같다. 큰 일이네.
지루하던 군생활에 즐거운 자극을 찾기도 하지만 이것은 꽤 큰 자극이다. 줄어드는 동기들의 숫자도 아쉽다. 정말 그러고 나면 10명이던 동기가 7명 남는 거구나. 군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인데 차라리 이렇게 확정이 되었다고 하니 속이 시원하기는 하다.
1991년 6월 11일 화요일 비 2059
장마가 시작되려나 보다. 그 장마가 끝나면 뜨거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난 제대를 할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시간은 흐르겠지만 예상이 되지 않는다. 그날이 오면?
오늘은 내 지루한 군생활의 작은 성취 하나! 결국 승단!! 이래저래 쉽지 않았던 승단의 과정을 이제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상병 진급 전에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조금 늦었지만 자랑스러워해야겠다. 유격과 함께 하느라 준비하는 과정이 녹녹지 않았지만 잘 버텨냈다.
준비 태세 교육을 실시했다. 꽤 오랜만이다. 나라고 별다를 것 없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중대원들이 훨씬 많다 보니 당장 실시가 된다면 답이 안 나올 것이다. 어쨌든 조만간 새벽별보기를 함 해야 할 듯...
내일 보자!
1991년 6월 12일 수요일 흐리다가 해 뜨다가 다시 흐림 2105
전투 체육의 날! 더 이상 태권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좋구나.
체육활동에 그닥 관심이 없는 편이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애들 노는 거 구경하다가 퇴근했다. 보고만 있어도 젊음이 뿜뿜이다.
그 와중에 손기정 씨가 놀라운 소원수리를 작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뭐랄까? 한 마디로 군기가 다 빠져서 중대가 엉망이고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을 적어 놓았던 모양이다. 말로만 듣던 갈참의 꼬장인 건가? 우리들은 뭐 그럴 것까지야 하며 웃었지만 나라고 별 수 있겠나 싶기도 하다. 다만 평소 그의 온화했던 성품을 생각하면 이렇게 재를 뿌리고 가는 것은 의외이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바가 없지도 않고...
말 많아서 크게 좋을 것도 없지만 말 많다고 별로 해결되는 것도 없는 게 군대인 것 같다.
1991년 6월 14일 금요일 맑음 2101
6월에 들어서도 사격 훈련이 잦아졌다.
어젯밤에 야간 사격이 있었다. 사격을 하지 않는 M60 사수의 입장에서는 달빛 아래 남의 일 구경하기다. 언제나처럼 탄창 불출 및 회수를 담당했다. 부담 없는 야간 사격은 낭만적이기도 하다. 시각보다는 청각, 후각이 더 예민해진다. 보이지 않는 사선으로부터의 총소리가 아득하게 귀에 밀려 들어오고, 밤이라 더 멀리 퍼지는 것 같은 화약 냄새는 더욱 자극적이다. 어쨌든 행복은 사격순이다?!!
자정에 귀가했고, 덕분에 정오 출근으로... 오늘 중식이 어제 석식을 대체하며 똔똔이 되었다. 계산은 철저하게...
1991년 6월 16일 일요일 해 쪼금 바람 쪼금 1955
동혁이 집에 왔다. 한숨 푹 재우고, 밥 먹여 보냈다.
윤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병의 여유가 느껴진다. 시간은 흐른다.
1991년 6월 17일 월요일 맑음 2120
이런저런 험한 꼴 안 당하려면 결국 제대가 답이다.
동기들과 기분 좋게 한 잔 하고 집에 들어서자, 내일 새벽에 비상이 걸렸다는 연락이 도착해 있었다. 절차에 따라 인사병에게 확인하고, 분대원들에게 다시 한번 상황 전파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조만간 걸릴 것은 알았는데, 이렇게 전혀 사전 고지 없이 퇴근 후 연락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하기는 그래야 비상이기는 하지. 아니 이것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까 진정한 의미에서는 비상이라고 하기는 애매한 건가? 정말 전쟁이 난다면 그야말로 자다가 벌떡 일어나 출근을.. 아무튼 부대 밖에서 출근을 해야 한다는 점은 현역들의 준비태세와는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훈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비상 시간은 0640, 최악은 아니다. 군장 꾸리고, 물자 분류 실시하고, 총기류 챙기고... 정신없겠다. 비상 훈련 안 해본 기수가 절반 이상이니...
제대가 최선이다.
1991년 6월 18일 화요일 맑음 2017
비상 출근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 시간은 1700이었다. 일일 정비가 주어지겠지. 조식을 부대에서 먹었으니... 밤새 800인분의 식사를 준비했을 취사병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모든 상황은 엉망이었다. 준비 태세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그나마 물자분류의 상당 부분을 카드로 대체하여 진행되었지만 결국은 고함과 쌍욕과 곡소리의 향연이었다. 뒤 끝은 제법 길어 열받은 중대장과 인사계의 살풀이도 있었다.
그러나 교육이 충분히 되어 있지 않은 훈련을 병사들의 탓으로만 돌리리는 것이 타당한가? 어차피 냉정한 사후 평가 따위는 없다. 내일 다시 비상이 발생하더라도 오늘과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일주일 내내 하고 나면 좀 달라지려나
그나마 우리 분대원들은 쌓인 짬 덕분에 잘 대처가 되었다는 점이 다행이라는 정도! 언제나처럼 오늘도 부지런한 영재가 큰 역할을 했다. 고맙다. 물론 다른 녀석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1991년 6월 19일 수요일 맑음 2350
오늘로써 그날까지 100일 남았다고 한다.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재석이 한 마디 했다. 지난 400여 일의 시간! 결코 흐르지 않을 것 같았던 세월이 제법 지나갔다. 여전히 지나간 시간은 빠르게 느껴지고 다가 올 시간은 멀게만 느껴진다. 분명히 남은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가야 할 시간, 해결해야 할 시간이 결코 작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동기들이 있기에 지루하고 짜증스러운 시간들을 버틴다.
그런 의미에서 100일 축하 회식!
1991년 6월 20일 목요일 아침에는 흐렸다가 오후에는 해 뜸 2050
자가 정비! 쉬는 날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1991년 6월 21일 금요일 맑음 2420
2소대 화기분대 송별 회식!
포병 연대 창설에 따라 분대의 효진과 동호가 전출을 가게 되었다. 8명으로 꽉 차 있던 분대가 졸지에 6명으로 줄어들었다. 언제인가는 충원이 되기는 하겠지만 화기 분대로써는 인원수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기관총보다 훨씬 큰 포를 쏘러 간다니 보내 줘야겠지.
섭섭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동안 너희들의 도움에 진심으로 고마웠다. 부족한 고참 말을 싫은 티 안 내고 함께 따라 주느라 고생들 많았다. 제대로 고참 역할도 못했는데 고생만 시키다 보내게 되서 너무 미안하네. 모두들 함께 해준 시간 너무 고맙다. 효섭! 동호! 무운을 빈다. 함께 가는 형호 말 잘 따르고 남은 군생활도 잘하기 바란다. 정말 너무나도 아쉽구나.
그리고 영재야! 어리바리한 쫄병들 챙기느라 늘 고생이 많았다. 너무나도 고맙다. 사실상 네가 분대장이나 다름없는데, 경일도 말년 티 내고 있고, 나도 아무 생각 없고... 너도 짬으로는 적지 않은데 여전히 깍듯하고, 늘 최선을 다하고, 뺀질거리는 인해 달래 가며, 효섭, 영길, 동호 이끌고, 아직은 어설픈 훈근 가르쳐가며, 고군분투하는 것에 고맙다.
1991년 6월 22일 토요일 맑음 2120
7월이면 상병이다. 더불어 중대 선임 기수가 된다. 병 중에는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비록 3개월뿐이라 아쉽지만 어쨌든 그런 시간이 되었다.
동기 중에 한 명은 중대 선임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의 묵시적인 합의에 따라 해민이 선택되었다. 덕분에 해민은 다음 주 분대장 교육 파견이다. 일주일 간 퇴근할 수 없다. 방위 입장에서는 제일 하기 싫은 일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래도 신교대와 분교대는 같이 있기 때문에 교육받는 신병들을 보며 추억을 되새기는 재미가 있기는 하다.
생각해 보면 신교대 시절, 야간 동초 근무 설 때, 순찰하는 녹색 견장을 달고 있는 상병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분대장 교육을 받던 고참들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야말로 중대 선임 기수가 되었다. 다시 한번 세월이 흘렀음을 느낀다.
이해민 화이팅! 90-4기 화이팅!!
1991년 6월 23일 일요일 흐림, 소나기 2052
조금은 짜증 섞인 기분으로 하루를 접는다.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여전히 아니다. 지난 15개월 동안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싫었다. 늘 기도하는 마음을 세탁한 군복을 다림질하며 줄을 세우는 이 시간이 참 싫었다.
100일만 깨지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사람 마음이 그게 아니어서, 아직도 100일 남아 있고, 그날들이 지금까지와 별로 다를 게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내게 흥미로운 것은 휴일과 제대일뿐...
남은 시간 열심히 하자! 아직도 뛰어야 할 훈련이 몇 개는 더 있다. 방심하지 말 것!
1991년 6월 24일 월요일 구름 약간 2016
참으로 간만에, 아니지 처음으로 인사계와 앉아서 대화할 시간을 가졌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고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상호 간의 불신이 문제이다. 병과 간부 사이의 불신! 왜 그럴까? 말 끝마다 묘한 속뜻을 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인사계에게 인간적인 동정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인사계는 군인으로서 훌륭한 중사이다. 비자발적으로 끌려온 우리에 비하여 본인의 의지로 군인의 길을 선택했고,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왔음을 안다. 직분에 매우 충실하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가 갖고 있는 열등감을 보았다.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고졸이라는 부분에 열등감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유독 대학생이 많은 부대 특성 때문인지 일 하나 진행시킬 때마다 조심스럽다는데 참으로 뜻밖이었다. 그것이 고졸인 못한 자신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함을 알고 깜짝 놀랐다. 열등감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인데...
나는 인사계가 얼마나 존경스러운 군인인지 열심히 내 생각을 말했다. 일부 과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 진심이었다. 나는 지난 15개월간 군인으로서 그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고 감동했다. 물론 그도 인간이기에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할 수 없는 일을 그가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면서 남아서 나라를 위해 헌신할 사람 아닌가?
그런 점에서 나는 진심으로 그를 존경한다. 인사계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또 다른 인간적인 모습을 본 하루였다.
힘내요. 인사계님!!
1991년 6월 27일 목요일 흐림 2047
딱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다.
그저께와도 같았고, 한 달 전, 육 개월 전, 그리고 1년 전, 15개월 전과 같은 그런 하루였다.
0500 기상
0600 출근버스를 타고,
0700 부대에 도착! 군화를 닦고, 짱 박혀 있다가, 중식! 야외 교장에서 교육 좀 하고 중대 복귀하여 환복 하고,
1700 퇴근
1900 귀가 완료
출근 수송버스 스케줄 상 어쩔 수 없이 늘 중대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편이다. 의도치 않게 누가 일찍 오는지 감시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보자마자 목이 터지도록 큰 소리로 경례를 하는 쫄병들을 피해서 군화 대충 닦고, 중대 근처에 짱 박혀 있다가 출근 점호 임박해서 열 뒤에 살짝 붙는다. 나름의 배려인데 경례에 일일이 답하는 것도 번거롭기도 하고...
되도록 눈에 띄지 않기 위하여 조심하는 하루였다. 요즘은 그렇다.
1991년 6월 28일 금요일 아침 구름 오후 태양 2200
6월은 여름이 맞지! 해가 뜨면 너무나도 뜨거워지는 여름이다.
이런 날씨에 각개전투를 실시하면 더욱 그렇다. 충용 아파트 뒷산에 있는 각개전투장을 세 번 정도 오르락내리락하였다. M60 사수로써 고지 위에 올라 기관총을 거치해 두고, 분대원들과 같이 짱 박혀 중대원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구경했다. 이럴 때는 기관총 사수가 꿀보직이다.
참 더운 날씨였다. 이제부터 두어 달 이 더위가 계속될 터인데 어찌 버틸까 싶다. 그래도 이번 여름은 희망의 여름이구나. 이렇게 시간이 흘러서 제법 더위가 꺾인다 싶을 무렵에 제대를 하게 될 테니까... 군복을 입고 나서야 여름이란 지내기 힘든 계절임을 알았고, 겨울이란 눈물 나도록 혹독한 계절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일 년 내내 같은 군복을 입고 사계절을 보낸다. 때로는 팔을 걷어서, 때로는 야상을 걸쳐 입고... 그러나 전투복 자체는 늘 같은 옷이다. 그 덕분에 봄과 가을이 얼마나 좋은 계절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좋은 계절이 얼마나 짧은지도 실감하였다.
어찌 되었든 이제 시간이 제법 흘러 추웠니, 덥니 타령을 하고 있지만 지난해 여름이 올해처럼 더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땐 어마어마한 긴장감으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여름은 이제 시작이다. 잘 보내자!
1991년 6월 29일 토요일 비 2114
모처럼 비가 내렸다. 오랜만이어서인지 제법 많은 비였다.
포병 연대로 차출된 인원들이 오늘부로 각자의 보급품을 정리해서 떠났다. 20여 명 정도가 중대를 떠나니 썰렁한 느낌이다. 예정되어 있던 대로 동기 중에 형호가 포병으로 전출되었다. 우리 분대원인 효진과 동호도 떠났다. 포병은 3보 이상은 승차라고 하니,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섭섭함!
형호는 물론 퇴근 후에도 수시로 연락하여 만날 테고, 어차피 중대 내에서도 각자 임무하다 보면 볼 시간도 없으니까 실질적으로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그러나 마음의 허전함은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 10명이었던 숫자가 줄어들어 어느새 7명이 되고 보니, 우리 소대의 경우 4기는 나 혼자뿐인 상황이기도 하다. 꽤 많았던 것 같은데 뒤돌아보니 얼마 없네. 하기는 떠나는 놈들이 좀 더 아쉬우려나? 새로운 것에 대한 걱정 반, 기대 반!
해민이 분교대를 마치고 복귀했다. 녹색 견장이 찬란하다. 게다가 상병 계급장이라니... 진급 신고를 하고, 견장을 달고, 퇴근길 군장점에 들러 상병 계급장 오바로크를 쳤다. 이제 그동안 주로 군장 속에만 넣어 두었던 새 군복을 꺼내 입는다. 남은 3개월은 이 군복을 입고 지낼까 싶었는데, 워낙 군복 상태가 새삥이다 보니 길들이는 것도 만만치 않겠다. 그냥 입던 것 입고 제대할 때 애들이나 줘야겠다.
예비역 선인이 집에 왔다. 같이 비디오 빌려 보며 시간 보냈다.
1991년 6월 30일 일요일 저녁이 될수록 흐려짐 2155
올 해의 반이 지나갔다. 빠르구나. 지나 간 시간은 언제가 그렇다. 지나간 시간보다 남은 시간에 초점을 맞춘다. 이제 자유인 되기 3개월 남았다. 시간 타령은 이제 더 할 필요도 없다. 아쉬웠던가? 아니다. 시원하다. 더 빠르게...
이제 내일부터는 중대 선임이다. 상병 이진성은 아직 입에 붙지는 않는다. 어쨌든 이제 최선임이라니... 스스로가 대견하다. 남은 시간도 잘 해내자.
나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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