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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1991년 5월

rivervox 2024. 9. 19. 00:00

1991년 5월 4일 토요일 맑음 2157

사랑하는 친구, 경훈과 선인이 집에 왔다. 먼 곳에 벗이 있어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그랬지.

 

이제 지난 3년 가까운 시간을 잘 버티고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경훈에게 무한한 존경과 격려를 보낸다. 그 인고의 시간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말이 필요 없이 뼛속 깊숙이 새겨질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 5개월이 남았구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가 있는 그 세월이렸다. 헤아리지 말고 버티자.

 

1991년 5월 5일 일요일 맑음 2014

일요일과 겹치는 공휴일이라니... 하루의 손해!!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0500 기상, 0600 출근, 1700 퇴근, 집에 도착하면 1900! 이것저것 하다 보면 2300 정도 취침!! 다시 기상하고 출근하고 훈련하고... 언제인가는 내가 지금 자유로워질 것이라며 꿈꾸고 있는 그날이 오겠지.

 

오늘도 예배하는 것처럼 경건하게 군복 줄 잡는 시간을 갖는다. 일기를 좀 더 열심히 쓰자!!

 

1991년 5월 6일 월요일 흐리고 비 2117

오늘 출근길은 서서 갔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서서 자는 기술이 나날이 늘고 있다.

 

국기 계양식에 참석했다.

 

중대 보급병과 동기들 몇 명과 함께 중대 창고를 정리했다. 오전부터 시작한 일이 점심 식사 후 오후까지 퇴근 직전까지 이어졌다. 새것도 없고 헌 것도 없는 그런 창고였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쓰레기들을 이쁘게 모아 놓은 곳 같다고나 할까?

 

1소대장이 새로 부임했다. 강 하사! 앳된 얼굴이다. 우리보다 나이도 어리다. 당분간 고참들과의 힘겨루기가 있겠지.

 

드뎌 아들들이 왔다. 4기 신병들이 왔다. 아들 기수의 출현은 이제 확실하게 중대에서 고참이 되었음을 인증받는 일이다. 1년 전 그날, 나는 비록 자대 배치받자마자의 훈련으로 아버지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시작했지만, 어쨌든 이제는 내가 그 아버지가 되었구나.

 

신병 중에 고등 & 대학 후배인 용우가 있어 깜짝 놀랐다. 반가운 놀라움이라고나 할까? 대학 때 형~ 형~~ 거리며 쫓아다니던 녀석이었는데, 귀엽기도 하고 수줍음이 좀 많은 편이다. 입대 후 연락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여기서 보게 된다. 덩치도 작은 녀석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작은 키로 면제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닌가? 중대 내에서 등빨 좋은 녀석들을 보면 "굳이 용우까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형이 있어서 다행이란다. 그래 한 5개월은 같이 지내겠구나. 5개월후면 너도 짬 좀 차고 조금은 쉬워지겠지? 아니 한창 힘들 군번이 되는 건가? 어쨌든 있는 동안이라도 잘해 보자. 아들이자 동생이자 후배인 너를 보니 어쩐지 마음이 짠하다. 고참으로써 해 줄 수 있다면 해줘야지. 그렇다고 대단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또 뭐가 있나?

 

군기 바짝! 눈알조차도 함부로 굴리지 못하는 아들들! 당연히 지금까지의 그 어떤 신병들보다도 애정 돋는다.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나도 그랬고, 재네들도 그럴 것이고... 세월은 그렇게 흐른다.

 

1991년 5월 8일 수요일 오전 흐리다가 오후 갬, 모래 바람 2001

채 이병이 소총 멜빵이 사라졌다고 찾아 왔다. 뭐시라? 이게 말이 되나? 검열 대비 총기 수입을 시켰더니 멜빵을 풀고서는 깜빡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소대 보급 담당으로써 매우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뭐라 할 틈도 없이 고참들의 갈굼이 시전 되고...

 

중대 막사와 사단 내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호준의 결정적 도움으로 찾을 수가 있었다. 나 같으면 내 소대의 일이 아니라 모른 척했을 텐데 역시 천사 같은 내 동기!! 그래서 많은 후임들이 좋아하는 거겠지.

 

채 이병은 무서웠던 고참들의 갈굼에 아랑곳없이 잃어버렸던 물품을 찾았음에 행복해졌다.

 

윤철이 전화했다. 나의 남은 시간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남의 시간을 한탄했다. 괜히 미안해지네.

 

1991년 5월 10일 금요일 맑았다가 퇴근 무렵에 비 2010

1주일의 대기 기간을 가진 신병들의 소대 배치가 완료되었다.

 

용우를 포함하여 신병 두 명이 2소대에 배치되었다. 다행히도(?) 화기분대는 아니다. 배치가 확정된 소대 신병들을 위해 총기, 철모 그리고 관물대를 마련하고 주기를 표기했다. 애비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퇴근길에 용우는 같은 소대라서 되어서 좋단다. 나는 기왕이면 같은 분대라면 더 좋았겠지라고 농담을 했다. 힘들겠지만 잘 버티기 바란다. 응원할 뿐이다.

 

1991년 5월 11일 토요일 비교적 흐림 2225

드문 일이기는 한데 오늘 출근길에는 호준이의 무릎에 앉아서 갔다. 맨날 호준의 엉덩이가 뾰족하다고 놀렸었는데 오늘은 내 엉덩이도 뾰족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자 정리 한답시고 창고를 오르락내리락! PX를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들락날락!! 별 것도 없는데 PX는 늘 새롭다. 국민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 같다.

 

퇴근길에 91-4기 녀석 중 한 명이 콜라를 준다. 미처 이름을 인지하지 못해서 미안하네. 굳이 사양했으나 극구 주장하여 받았다. 고참이 거절하면 물러나는 법인데 내가 만만해 보였나? 그 마음이 고맙다.

 

이래저래 바쁘다 보니 아직 아들들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못 가졌고 이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다음 주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친해져야겠다.

 

1991년 5월 12일 일요일 맑음 2050

소대 보급계를 맡고 나서는 불쑥 뜬금없는 걱정거리가 떠오른다.

 

가만 어제 퇴근 전에 이요한의 총을 병기함에 제대로 넣었던가? 맙소사! 그냥 관물대에 처박아 둔 거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내일 보면 알겠지.

 

걱정도 팔자인게지.

 

1991년 5월 13일 월요일 맑음 2127

총기검열 실시! 검열은 그저 깨지기 마련... 원 없이 모든 중대원들이 깨졌다.

 

지난주부터 검열 대비하여 총기도 수입하고 눈을 속여 보기 위해 노력했으나 역시 부족했다. 더군다나 나는 M60에 신경을 써야 했는데 소대 보급계 일을 맡았답시고 소홀했다. 사실상 쇳덩어리인 M60은 조금만 방심해도 녹이 쓴다. 특히 예비총열을 깜빡했다. 영재가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이 미안해했지만 감히 누굴 탓하겠어! 내가 사수이고 나에게 최우선의 책임이 있는 건데...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이곳을 싫어하지 말자. 늘 부조리한 것 같은 조직이지만 지금은 나도 그 부조리에 한몫을 하고 있지 않은가? 간사하고 치사한 고참이 되지는 말자. 결국은 솔선수범하는 것이 스스로를 제일 편하게 하는 길이다. 1년 전 그렇게 눈물 흘리며 감내했던 고통과 어려움을 지금의 쫄병들이 똑같이 겪으며 고민하게 하지는 말자.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는 점도 있어야지.

 

쫄병들이 모르고 실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대범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물론 교육은 해야겠지. 그러나 경박함과 경솔함은 버리자.

 

1991년 5월 14일 화요일 더운 하루 2039

대구가 30도를 넘었다고 한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는 건가?

 

어제의 검열 지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이 실시되었다. 당연하게도 총기 수입을 다시 실시했다. 난 분대원들과 함께 M60 녹을 제거하기 위해 상당 시간 공을 들였다. 원래라면 쇠솔을 쓰면 안된다. 그러나 이미 수년 동안 선배들이 갈고 닦아온 나의 M60은 광택이 다 사라지고 코팅도 다 벗겨진 쇳덩어리일 뿐이다. 그러기에 그저 기름칠만 한다고 없어질 녹이 아니다. 간부들은 쇠솔을 사용을 금지하지만 그게 아니면 사실상 방법이 없기에 눈을 피해서 쓸 수밖에 없다. 사실 닦는다기보다는 갈아 내는 셈이지만...

 

진지공사 이후 조금은 한가로운 시간들이지만 조만간 유격 훈련이 시작될 것이다. 이 짧은 평화는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가?

 

1991년 5월 15일 수요일 맑음 소나기 구름 가끔 비는 오지 않음 2046

무척 더웠다.

 

작업의 계절이다. 유격장 보수 작업이 시작되었다. 사단 뒷산 정상 근처에 설치되어 있는 유격장 보수 작업을 실시했다. 산이라기보다는 좀 높은 언덕 수준이지만 제법 경사가 심해서 전력으로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쉽지 않다. 죽을 자리를 손보는 기분이다. 당분간 매일 작업이겠다.

 

그렇게 여름이 오고 있다.

 

1991년 5월 16일 목요일 말고 더웠으나 시원한 바람 오후에는 소나기 2025

오늘도 무덤을 파고 왔다. 유격장 보수 작업! 거의 1년여간 손보지 않은 유격장은 여기저기 무너져 있었다. 오후에는 소나기가 내렸다. 그러나 피할 길 없이 작업은 지속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지내고 있다.

 

1991년 5월 17일 금요일 새파란 하늘, 맑았음 2005

사흘 째 유격장 보수 작업은 이어진다. 서울 촌놈들이 대부분인 중대 특성상 서투른 삽질이 많다. 그래도 지난달 진지 공사 경험이 도움이 좀 되는 것 같다.

 

호준, 성한, 경국 그리고 형호와 저녁을 먹었다. 야구 경기를 보러 갈 계획이었으나 유격장 작업이 늦어져 퇴근 수송버스도 놓치면서 포기했다. 부대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언제나 동기들과의 모임은 즐겁다. 

 

1991년 5월 18일 토요일 맑음 2345

오늘로써 유격장 보수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가서 행복한 유격을 받으면 된다.

 

작업 마무리를 하고 장비 정리를 하느라 보급병 녀석과 중대 창고 정리 실시! 가위바위보를 통한 PX 내기에서 물렸다. 크게 한 판 쐈다.

 

1991년 5월 19일 일요일 비교적 흐림, 덥고 2016

시간이 지나간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의미 없는 것 같지만 시간은 흘러간다.

 

다음 주는 사격 집중 훈련이 있을 예정이다. 사격은 언제나 긴장된다. 화약 냄새와 총소리는 사람을 흥분시키면서도 긴장되게 한다. 더군다나 경험이 없는 쫄병들이 많아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1년 전 우리 때와 비교해 보면 훈련이 많이 느슨해진 것 같다. 고참들은 늘 그렇게 생각하지. 요즘 쫄병들은 군기도 다 빠졌고, 군생활도 널널하다. 확실히 훈련양은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고참의 꼬장은 부리지 말자! 우린 여전히 어리고 덜 익었다. 유치하게 굴지 말 것. 힘들지 않은 군대가 어디 있나? 언제나 자신의 보직이 가장 빡쎈 법이다.

 

오늘도 군복을 다리며 마음의 평화를 구해본다.

 

1991년 5월 20일 월요일 목이 마르고 미칠 듯이 더웠다 24:34

M60 사격을 실시했다.

 

입대한 지 1년이 넘었고 M60 사수가 된 것도 어언 반년은 되었는데, 사격은 처음이다. M60 사격에서 중요한 점은 연발 사격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총 사격은 늘 단발로 진행된다. 그러기에 단발 사격에 익숙하다. 전쟁을 상상해 보면 저격수의 조준 사격이 아니라면 사실 연발을 해야 할 텐데... 실사격 경험은 사격장이 전부이다 보니 연발 사격을 해볼 기회가 없다.

 

사격 전, 기관총은 연발 사격이 중요하다고 교육을 받았지만 첫 격발에서는 연발의 어색한 느낌과 반동에 깜짝 놀라며 방아쇠를 놓게 된다. 그러면 일단 욕을 처먹고 재도전! 소총은 연발이 사고지만, 기관총은 단발이 사고이다. 두어 번의 시도 끝에 연발이 가능했다. 일단 익숙해지니 연발의 느낌은 매우 짜릿했다. 그 반동과 탄환의 날아가는 모습, 소총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함이었다. 총소리는 오히려 소총보다 작은 느낌이었다. M60의 사격 장면은 희귀하다 보니 중대원들도 관심 있게 구경을 했다. 다소의 주춤거림이 있었지만 사격을 마치고 난 후에는 오히려 좀 더 쏘고 싶었다.

 

M60 타깃은 1000미터 정도 떨어져서 사격장 제일 높은 곳에 마련된 사선에서 사격을 실시했다. 그 와중에 탄창 중간중간 섞여 있는 예광탄 때문에 표적 뒤쪽의 숲에 불이 붙었다. 모두들 놀라서 불을 끄러 사격장을 가로 질러 달렸다. 하마터면 큰 불이 날 뻔했으나 다행히도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중대장님을 비롯하여 소대장들이 모두 놀라서 빠르게 달리는데 그렇게 빠른 모습은 처음 보는 듯...

 

모두들 식겁을 하고 나서야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더위를 느낄 수 있었다. 목식까지의 이동 중 늘 들리게 되는 단골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를 챙긴 게 신의 한 수였다.

 

그렇게 불나방 같은 하루를 마치고 퇴근하여 형호, 호준, 경국과 회식을 했다. 동기 모임이 잦아지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그만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일까? 이제 남은 시간은 4개월! 그러나 그 이후에도 우리가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 날이 오려나? 그때는 그때이고 오늘은 그렇게 저녁을 먹었다.

 

이제 경훈에게 전화할 수 있는 날도 머지않았다.

 

1991년 5월 21일 화요일 맑음 2010

지난밤은 매우 늦은 시각에 잠들었다. 사격을 하고 나면 확실히 뭔가 좀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 있다.

 

주중 공휴일을  내어 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린다. 아이들의 고함 소리와 건넛집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그러나 곧 다시 잠이 들어서는 하루 종일 잠만 잔 것 같다. 

 

저녁이 돼서 머리를 깎았다. 2주에 한 번씩이던 횟수가 이제는 월 1회 정도로 줄어들었다. 나는 고참급 중에서도 머리가 짧은 편이다. 머리가 긴 게 불편해서 자주 깎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머리가 긴 쫄병들이 내 눈치를 보기도 한다. 나는 쫄다구들의 머리길이를 개의치 않는다. 다만 간부들 눈에 띄어 잘리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 애들은 내가 너무 짧아서 자기들이 더 비교당한다는 쉰소리를 하기도 한다. 각자 알아서 재주껏 살아남으라!!

 

누워 있다 보니 문득 M60 수입도구를 어디다 두었더라.. 하는 걱정이 든다. 어제 사격 후 수입하고 나서 총에 그냥 매달아 둔 것도 같고... 그 이상의 기억이 없다. 덤벙대는 성격이 아닌데, 군복무하면서 무언가 좀 변한 것 같다. 나쁜 쪽으로? 하기야 뭐 별일 있겠나. 걱정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내일 보자.

 

1991년 5월 23일 목요일 맑음 2025

사격 주간! 어젯밤에는 야간 사격이 있었다.

 

그렇게 밥먹듯이 야간사격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1년 전의 일이구나. M60 사수인 나는 더 이상 소총 사격을 하지 않는다. 소총수들을 위한 탄창 분출 및 회수 업무를 맡았다. 야간이던 주간이던 사격은 긴장되는 일이지만 특히 야간은 더욱 긴장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 기수 이후로는 야간 사격도 사실상 처음 아닌가?

 

사격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0100 오전 반나절 자가 정비 후에 1200 출근을 했다. 오후 시간은 총기 수입 위주로 부대 내 정비를 진행했다.

 

언제나 소문이 많은 군대이지만 요즘은 정말 어수선하다. 무엇하나 정확하지 않고 정신이 없다. 조만간 중대 개편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중대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단 전체 편제의 개편인 것 같다. 새롭게 기계화 연대인 포병 연대가 창설되면서 일부 중대 인원이 차출될 것이라고 한다. 중대 인력의 30프로 정도는 줄어들 것 같다. 물론 되어봐야 되는구나 할 일이지만 새로운 소문의 시작이다.

 

유격도 실시되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다. 사실이라면 좋은 일이지만 그저 누군가의 희망사항에서 나온 소문일 것이다. 지난해에도 그 난리통에 결국 실시되지 않았던가?

 

친절한 고참이 되자!

 

1991년 5월 24일 금요일 흐리고 비 약간 2250

한동안 뜨거워지던 날씨가 비가 오며 좀 식었다.

 

그러나 어수선함은 더 심해지고 있다. 포병 차출과 유격! 병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은 불확실성!! 높으신 분들이 사병들이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랑곳할리가 없겠지. 높으신 분들의 뜻을 미리 알려고 하지 말자!

 

퇴근 후에는 호준과 잠실역에서 종합운동장까지 걸었다. 가끔은 지금 이 자리에서 떠나고 싶다. 한 없이, 끝없이 밤을 새워가며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고 싶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막상 자유로워진다고 해도 실현가능할까?

 

용기의 문제! 걱정할 것 없다. 나의 걱정이 윗사람들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는 못할 것이고, 내 살을 내가 깎아먹기에 불과하다. 부딪히면 다 하기 마련이다. 시키는 대로 하다가 9.28에 나서면 된다.

 

1991년 5월 26일 일요일 비 2105

또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비가 오는 휴일에는 그냥 잠만 자게 된다. 그래도 시간은 부지런하구나. 고마운 일이다. 휴일이 끝남은 아쉽지만 어차피 꼭 지나야 할 시간!

 

1991년 5월 27일 월요일 흐리고 싸늘 2116

5월의 끝!

 

이미 마쳤어야 할 승단을 이제야 준비하고 있다. 동기 중에 제일 늦다. 지난 시간 여러 사건들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14개월이 지나고 4개월! 그까짓 거 없어도 버틸 수는 있겠지만 자존심 문제니까..

 

과연 난 모범적 고참인가? 쫄병 시절 느꼈던 불합리를 시정시켰는가? 전혀 아니다. 부끄럽게도 제대로 시정된 것은 없다. 이제 끝내기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잘해야겠는데... 좀 더 열심히 해보자!

 

1991년 5월 29일 수요일 맑음 1936

어젯밤은 참 추웠다.

 

밤새도록 목식에서 사격하고, 그 인근에서 전술 훈련을 진행했다. 무언가 가벼운 중단거리 달리기 같은 훈련의 횟수가 늘어났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는 0500에 퇴근했다. 방위스런 퇴근이다.

 

그리고 이후의 나머지의 오늘은 자가 정비!

 

1991년 5월 30일 목요일 맑음 오후에 구름 2032

내일 승단 심사 대비하여 오늘은 태권도 연습을 했다. 어쨌든 1년간 해오던 짬이 있으니 내일은 무난하게 가능하겠지?

 

부대 내에서 예방 접종이 실시되었다. 장티푸스 & 콜레라... 권총식 주사기로 접종이 실시되는데 감염의 위험은 없는 것인지...

 

예방 접종 때문인지 피곤하다. 힘겨운 일과는 아니었는데 꽤 나른하다. 

 

1991년 5월 31일 금요일 맑음 2350

승단 심사! 합격은 필수 사양이다.

 

90-4기와 91-4기 17명이 회식을 했다. 아들들이 우리보다 더 많다. 우리도 10명에서 출발했는데, 중간 전출도 있었고, 육방도 있었고 이제는 8명만이 남아 있다. 그나마도 포병 부대 차출이 되면 더 줄어들지도...

 

중대장은 어떤 명분이든지 퇴근 후의 회식을 금지하지만 중대원을 다 쫓아다닐 수도 없고 말 뿐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회식마저 하지 못한다면 너무나도 삭막한 거 아닌가? 오늘이 아니면 당분간 시간을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다. 결국 확정되어 다음 주에 진행될 유격에 대비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아들들이었다. 불행히도 거의 두 달 연속으로 화생방을 겪어야 하는 참사가... 아니 뭐 군대에 대해 궁금한 것이 투성이겠지. 예의 그 200킬로 행군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어쨌든 잘 이끌어가볼 생각이다.

화기분대, M60과 사진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