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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1991년 2월

rivervox 2024. 9. 5. 20:03

1991년 2월 2일 토요일 맑음 2301
어제는 동기들과 회식을 했다. 오랜만에 화양리!!
 
금요일 밤 화양리에는 알만한 짧은 머리들이 많았다. 왔다 갔다 어슬렁거리다가 훈련소 동기와 마주치기도 했다. 중대장은 특히 금요일이면 늘 강조한다. 퇴근 후 술 마시지 말라고, 사고 치지 말라고... 그러나 얄짤없다. 그냥 하고 싶은데로 한다. 사고만 안치면 되니까... 그래서 마시고 논다. 그렇게라도 놀지 못하면 어떻게 버티냐!
 
무사히 과반의 군생활을 마친 것을 축하하였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그냥 동기들과 같이 낄낄대는 시간이 좋으니까... 과연 나는 이 친구들을 언제까지 만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죽을 때까지라고 말하지만 과연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일단은 오늘 잘 버티기!!
 1991년 2월 3일 일요일 구름 많이 2200
내일이 입춘! 말만 들어도 벌써 봄이 온 듯 설레는 기분이다.
 
1991년 2월 4일 월요일 오전 눈 오후 맑으나 바람이 드셈 2100
밤사이에 몰래 내린 눈! 기습이다. 주말에나 내릴 일이지. 월요일부터 봉변!!
 
수송버스에서 내리면서 보니 연병장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오늘의 일과는 이미 정해진 셈이었다. 사단 내 도로는 현역들이 밤새 치웠다고 했다. 현역 동기인 박 일병이 제대로 잠도 못 잤다며 피곤한 모습이다. 고생했다고 등을 두드려주며 무심히 챙겨갔던 가래떡을 건넸다.
 
삽질, 빗자루질 그리고 넉가래질!! 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하루 종일 눈을 치웠다. 오후에는 해가 뜨기는 했는데 바람이 드세서 쌓여놓은 눈이 눈보라처럼 날렸다. 시베리아 눈보라를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그 와중에 이제는 M60 사수다. 그동안 1 총 사수였던 최 상병이 다음 주 제대를 앞두고 전역자 교육을 받고 있다. 사실상의 은퇴인 셈이다. 그의 M60을 내가 물려받았다. 승진한 것이다. 덕분에 그동안 애인보다도 더 소중했던 나의 M16(148653)과도 이제는 안녕이다.
 
1기 신병들이 자대 배치받았다. 올 해부터는 군번 앞에 연도가 표기된단다. 91-96781234 뭐 이런 식이다. 와, 신박하다. 신병들 명찰을 보니 확실히 그런 식으로 바뀌었다. 96781234처럼 단순하게 8자리로 표기되는 방식은 90년 군번이 마지막이었다. 1이나 3으로 시작되는 현역과는 다르게 방위는 9로 시작되다 보니 연도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커져가는 쫄병들의 군번 숫자를 보며 제대가 다가옴을 느끼는 것도 하나의 낙이었는데... 그래도 이제는 군번만 보고도 몇 년 군번인지 확실히 알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뭐가 좋지?
 
누구는 전역자 교육받고, 누구는 신병으로 자대 배치받고... 대한민국 남성들의 무한루프!!
 
자자!!
       
1991년 2월 6일 수요일 흐름 2142
수요일쯤 되면 일단은 되게 피곤해진다.
혹한기까지는 아직 두 주 정도 남아 있지만 벌써부터 몸과 마음이 부산하다. 대비할 방법은 별거 없다. 닥치면 버틸 뿐...
 
대대 표식이 변경되었다. 205 연대를 상징하는 오각형에 어느 대대인지 숫자로 표기하던 방식에서, 스마일이 커다랗게 그려진 표식이다. 손톱만 한 크기에서 손마디만 한 크기로 바뀌었다. 교체 사유가 어찌 보면 민망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데... 구타 및 갈굼 방지를 위해서란다. 구타를 하기 전에 스마일을 보고 일단 멈춤 하라는 것이다.

205연대 대대표식

 
우리 부대에 그렇게 구타가 많았던가? 이제는 고참 좀 되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물론 여전히 일부라도 구타나 갈굼은 존재한다. 타 중대나 대대는 제법 심한 곳도 있다고 듣기는 했다. 중대마다 분위기가 다르니 연대 전체적으로 무조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 2중대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완전하게 없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고참의 입장과 쫄병의 입장은 다르니까... 그러나 이렇게 대대적으로 캠페인을 해야 할 정도였던가 싶은 생각은 든다. 신임 연대장님의 성과용? 물론 정말 사소하고, 작은 구타라도 없는 게 맞다. 사람이 사람을 때린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이리 구타에 익숙해진 느낌이 들까? 나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
 
스마일! 늘 웃음 띤 얼굴로 고참과 쫄다구들을 대하자!!
 
1991년 2월 8일 금요일 맑음 2204
바로 지금 이 순간! 발이 터지도록 행군 중인 200여 명의 군인이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오늘 밤으로 훈련을 끝내게 될 3대대가 부럽다. 더군다나 겨울 날씨가 이 정도면 혹한기라고 할 것도 없는 한 주였다.
 
별다른 일과 없는 하루였다. 고참들의 헛소리만 잔뜩 들었다. 잠이나 재우지. 어차피 전문화되지 못하고, 그저 지난 십몇 개월의 경험으로만 떠드는 교육이니 큰 가치가 있을 것도 없다. 경험담 전파 혹은 시간 때우기~
 
말 많은 문제의 8기들! 부조리가 넘치고, 고참을 고참으로 여길 수 없는 그 전적인 책임! 내일모레면 나갈 것들이 왜 저 모양인지 알 수가 없다.
 
1991년 2월 9일 토요일 맑음 2053

문제 많은 하루였다. 수송버스 고장으로 간신히 지각을 면하여 부대에 도착하더니... 섣부른 선의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악화시킨다.
 
동기 중 선임이 된다는 것은 욕도 더 많이 하게 되고 그만큼 욕도 더 먹을 각오를 해야 하고... 이 군생활에 그것도 권력이라면 권력이겠지만 사실상 책임만 더 많이 늘어나는 자리이다. 그래서 회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동기끼리는 내심 해민을 중선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 그 말은 해민이 후임에게는 특히 무서운 고참이다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는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책임감으로 악역을 맡고 있을 뿐이다.  
 
그런 해민과 트러블이 있었다. 주말을 맞아 내무반 청소를 하는 와중에 의자 줄 맞추는 일에서 빠지며 뺀질 대는 용수(6기)를 갈구는 해민에게 필요 없는 참견을 한 것이다. 구타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좀 갈군 정도인데... 그러지 말라며 도움도 안 되는 참견을 하였다.
 
나야말로 그래서는 안될 일이었다. 동기라도 선임의 권위를 인정해줘야 할 일이었다. 평소에는 중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도 안 쓰다가 뭔 오지랖을 떨었는지 원... 그게 아니라면 철저하게 책임을 지고 나서던가! 그저 나의 우유부단함과 패배의식이 얼마나 무가치한지 확인했다. 참담하구나.
 
"섣부른 선의" 라니... 말도 안 되는 어리숙함일 뿐이다.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일단 나 자신이 잘하고, 그다음에 나서자. 미안하다! 해민아!!
 
1991년 2월 10일 일요일 흐림 2145
성훈이 휴가 나왔다.
 
볼 때마다 제대로 더 멋있는 군인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신병 때는 달리는 게 제일 싫다고 투덜대더니 이제는 잘 뛴다고 한다. 애당초 힘으로야 꿀릴 것이 없었겠지만 수색대의 달리기라는 것이 고참들의 갈굼의 시간이기도 해서 싫어했던 것 같다. 이제 시간이 흘러 고참들과도 익숙해지고, 사실상 에이스인 녀석을 알아본 고참들의 태도가 달라지니 마음 자세가 달라지고 몸이 체감하는 것도 달라진 듯하다.
 
그나저나 건강함이 넘쳐 군복 찢어지겠다. 몸이 더 두꺼워진 것 같다. 수색대 짬밥이 좋은가 보다. 체질이다. 말뚝을 권해본다. 권유가 먹힐 리가 없지만...
 
오늘도 군복을 다리며 일요일을 닫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름 제법 경건한 의식이다. 그래도 오늘은 즐겁다구. 어차피 다음 주는 3일만 근무하면 설날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지만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1991년 2월 12일 화요일 맑음 2107
다음 주는 혹한기! 하필이면 설날 연휴가 끝나고 바로 시작될 훈련이 혹한기라니... 그래도 올 겨울 전반적으로 따뜻한 편이었기에 계속 그런 날씨이기를 바라본다.
 
중대 전술 훈련!! 이 쪽 과수원과 저 쪽 과수원 사이의 밭을 가로질러서 뛴다. 날이 따뜻해지니 얼었던 땅이 녹으며 진흙탕이다. 안 빠지려고 요리조리 피해서 뛰어보지만 끝내는 빠지기 마련이다. 기관총을 맨 사수는 이런 상황에서 더욱 몸을 가누기가 쉽지 않다. "돌격 앞으로" 구령에 따라 최대한 신속하게 전력으로 달린다. 연막탄까지 피워 놓으니 분위기는 제법 그럴듯하다. 언덕배기 아래 은폐를 하며 철푸덕 엎드리며 숨을 몰아 쉰다.
 
쉬다가 목이 너무 말라서 개천의 물을 마셨는데, 입안에 희한한 냄새가 퍼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주변에 축사가 있다. 이런 맙소사!!
 
잠시 대기 후에 산을 오른다. 숨이 가쁘고.. 목표는 고지 점령 후 사주 경계! 일단 죽도록 뛰어오른다. 실제 전장이라면 죽도록이 아니라 그냥 죽은 목숨이 아닐까?
 
퇴근! 하루 종일 뛰고 굴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복하고 퇴근! 오늘 하루 부대에서 무슨 일을 겪었던 지금은 행복하다. 오늘 밤 잠은 잘 자겠다.
 
1991년 2월 14일 목요일 흐림 2132
설날 연휴!
 
어제는 늦게 들어왔다. 우리 분대장 최 상병의 제대 회식이었다. 덩치 좋고 사람도 무던한 최 상병이다. 사실 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을 텐데 그래도 언제나 늘 잘 대해 주었다. 말수는 적고 그저 솔선수범하는 편이었다. 단 한 번도 욕설을 하지도 않았고, 짜증 낸 기억도 없으며, 갈굼도 없었다. 오히려 그의 다른 동기가 문제였지. 그래서 너무 고맙고 좋았다. 회식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동기 회식이 아닌 회식이 이렇게 즐거운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앞길을 축복해 본다.
 
이제 분대장은 경일이다. 2월에 들어서면서 사실상의 분대장 역할을 해왔지만 공식적으로는 이제부터인 셈이다. 만지면 부서질 듯이 삐쩍 마른 녀석이 어쩌다가 기관총 사수가 된 것인지... 그저 악으로, 깡으로 버텨 왔으리라. 기특한 일이다. 아니 존경스러운 일이다.
 
분대장이며 한 기수 선임지만 나의 고교 후배이다 보니 오히려 경일이 배려를 많이 해준다. 나도 후배이기전에 분명한 선임으로 인정하며 신경 쓰고 있다. 절대로 선을 넘어서는 안될 일이다.
 
내게도 언젠가 그날이 오리라. 2월 혹한기, 3월 항공대 파견, 4월 재물 조사, 5월 진지공사, 6월 유격, 7월 휴가, 8월 정신교육 그리고 9월이 오면... 제대!!
 
설날이라고 동혁이 휴가 나왔다. 우리 집에서 점심 먹고 그의 고향인 원주로 내려갔다.
 
1991년 2월 15일 금요일 비도 오고 눈도 내리고 2115
설날! 큰집에 다녀왔다. 참으로 재미있는 집안이다. 콩가루 양반!!
 
시간의 흐름! 이제 2월이 지나고 꽃 피는 봄이 오리라! 나는 그 세월의 흐름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한 발씩 느리게 가고 있는 것 같다. 대학도 그렇고, 군대고 그렇고... 늦음은 때로는 조바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정말이지 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누구와, 무엇에 비교해서 늦다는 말인가? 열등감! 그들과 나와의 관계는 절대 적대적이지도 않고 경쟁적이지도 않은데...
 
진정으로 지금 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1991년 2월 17일 일요일 맑음 2151
쉬는 날에는 다시금 확실하게 시간 흐름의 위력을 느낀다. 이렇게 설연휴는 끝나 버렸다.
 
내일부터 일주일 간 일기장은 휴업이다. 또 하나의 훈련! 혹/한/기/ 연휴가 끝나자마자 시작하는 훈련이라니... 덕분에 사실 설연휴도 온전히 맘 편하지 못했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라고 수없이 되뇌지만 그게 말처럼 맘이 움직여지는 것은 아닌지라...
 
힘을 내자. 쉽지는 않겠지만 분명히게도 재미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한 번의 혹한기로 끝이잖아.
 
결국은 시직 되는구나!
 
1991년 2월 26일 화요일 흐림 2015
"사랑하는 그대, 내 곁을 떠나갈 적에 그래도 섭섭했었나~~" 지난 일주일동안 이 노래가 왜 그렇게 귓가에 맴돌던지...
 
힘들지만 훈련을 한 번 뛰고 오면 좋은 점은 시간이 휘리릭~~ 흘러가 있다는 점이다. 그냥 일주일, 보름 혹은 한 달이 뭉터기로 지나가 있다. 훈련은 힘들었으나 그래서 행복하다.
 
그러나 잔인했다. 겨울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설 연휴 때까지만 해도 따뜻하던 겨울 날씨가 우리의 혹한기에 맞춰서 귀신같이 추워졌다. 연대의 마지막 순번으로 우리 대대가 지난주 혹한기에 뛰어들었다. 분명 2월 들어서 날씨가 계속 따뜻한 편이라서 봄이 멀지 않았구나를 실감하기도 하며, 이번 혹한기는 좀 덜 고생스럽겠다는 설레발을 떨었는데, 분명 다른 대대 동기들도 별로 안 추웠다고 했는데... 하필이면 우리의 훈련 주간에 올 겨울의 마지막 추위가 들이닥쳤다. 이런 C8!!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추운 날씨라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숫자로 보여지는 것과 실제 체감하는 것과는 천지차이! 산속에서 숙영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제대로 혹한기였다. 교과서에서 배운 1.4 후퇴 때의 추위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겨울은 추운 것이 당연하다지만, 이번 추위는 말 그대로 역대급 추위였다. 중대 본부 온도계가 측정할 수 없는 수준의 온도였다. 예보는 최저 온도가 영하 18도라고 했지만, 바람 부는 산 정상의 온도는 영하 30~40도가 실현되는 현장이었다.
 
숙영을 위해서는 땅을 파야 했다. 그렇게 땅 속이어야 그나마 추위를 피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원칙은 사람이 서서 지낼 수 있는 깊이로 파는 것이지만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려다가는 밤을 새워 땅을 파내도 될까 말까 싶었다. 공간 자체도 분대원 모두가 넉넉하게 들어갈 크기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4~5명 정도가 가능할 공간에 8명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앉아서 지낼 수 있을 정도로 파내고 준비해 온 비닐로 위아래 벽면을 둘렀다. 나뭇가지로 덮어 위장을 하고 입구는 기어서 들락날락할 수 있을 정도로 막아놓고... 그냥 거지 소굴과 다를 것이 따로 없었지만 그래도 숙소라고 노상의 추위에 비하면 정말 따뜻해서 아늑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흙벽이 계속 흘러내리고 비닐은 습기가 차서 수시로 손을 봐야만 했다.
 
불침번을 서기 위해서 야간에 일어나는 일은 정말 말대로의 지옥 체험이었다. 추위에 딱딱해진 얼음장 같은 위커를 신는 일은 큰 고역이었다. 식사는 대대 취사장에서 추진되었으나 엉망이었다. 이 추위에 취사병의 노고가 감히 짐작되는 바이지만 국물은 순식간에 기름이 뜰 정도로 살얼음이 끼고 모든 음식은 식다 못해 얼어서 도착했다. 어차피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없었고 그저 허기가 반찬이라고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래 저래 제대로 혹한기였다.
 
그나마 태양이라도 떠 있는 낮시간에는 영하의 칼바람 속이라도 좋았다. 기회만 되면 열심히 뛰어다녔다. 웬만하면 땀이 제대로 나지도 않았지만 잠시 쉬는 틈이면 찬바람에 식은땀이 몸을 더 떨리게 했다. 그 와중에 토끼를 잡겠다고 산 중 눈밭에서 토끼몰이를 해댔지만 그게 될 일이냐고...
 
말 그대로 중간 기수인 우리들은 그야말로 위아래로 치이고 부딪히느라 더 힘들었다. 고참들은 이것저것 시키고, 쫄다구들은 말을 제대로 들어 먹지도 않으니 자꾸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영재와 인해는 말 그대로 시키기 전에 알아서 하니까 갈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나만 잘하면 될 일이었다.
 
혹한기 훈련은 결국 추위에서 살아남기가 목표다. 공격과 방어를 통한 전술 훈련도 실시하지만 추위를 어떻게 버텨 낼 것인지와 복귀 행군이 핵심인 셈이다. 숙영지까지의 이동은 주간 행군이기도 하고, 최대한 빨리 이동하여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반나절 정도의 행군으로 도착했다. 그러나 복귀는 언제나처럼 야간 행군이다. 그것도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로 돌아서 가는 10시간짜리 행군이다.
 
고난의 일주일을 버텨낸 몸이기에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있다. M60은 여전히 무겁고 길은 미끄러울 것이다. 간부와 고참들은 출발 전부터 길이 군데군데 얼어 있으니 조심하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한다. 행군 출발에 앞서 인사계가 사진을 찍자고 말하지만 사진기를 가지고 온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것도 짐이니까... 그래도 사진 한 장 남겼으면 볼만했을 텐데...
 
1분대 쫄다구 한 놈이 약을 권한다. 소위 '뽕'이라고 한다. 사회에서 무슨 일을 했던 건지... 하기는 그런 약이라도 먹어야 이 고통의 밤을 좀 더 쉽게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위 여부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진짜로 먹은 애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익숙해진 부대 주변의 행군로와 마을을 지난다. 분명 좌측길로 가면 부대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우측길로 접어든다. 길게 늘어서 있는 양계장이 아득해 보인다. 겨울이라서 냄새가 덜 하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렇게 길고 긴 겨울밤의 행군이 이어진다. 눈이 오거나 하지는 않지만 쌓인 눈으로 이미 길은 군데군데 충분히 미끄러워서 종종 자빠지는 녀석들이 있다. M60을 짊어진 우리 분대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자빠지면 부상도 클 것이고 M60에게도 큰 일이다.
 
겨울이라 밤은 더 길구나. 수통은 꽁꽁 얼어버려 물을 마실 수도 없다. 자정 무렵이 되어 야식으로 컵라면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아득바득 이를 갈면서 버틴다. 그런데 생각보다 몸이 가뿐하다. 책임감 때문일까? 아니면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지금까지의 행군 중에 이렇게 가벼운 느낌은 없었던 것 같은데... 심각한 추위가 오히려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는 느낌이다. 심지어는 마지막 고비에서 해롱되고 있던 3기 전민기 일병의 군장을 밀어주며, 이제 다 왔다고 정신 차리라고 격려까지 해주는 여유를 부린다. 맙소사! 나도 그렇게 적응해 왔던 거구나.
 
새벽에 도착한 부대는 고요했다. 연병장에 모인 우리는 대대장의 선창으로 1대대 화이팅을 몇 번 외쳤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 돌와왔음을 선포했다. 타 연대 현역들이 아침 식사를 하러 가며 측은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어쨌든 끝났으니까 누가 뭐래도 좋았다.
 
우선 군장만 제자리에 넣어 놓고, 샤워를 했다. 얼은 몸을 빨리 녹여 줄 필요가 있었다. 일주일 만에 맞이하는 온수는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샤워 후에는 대대 식당에서 조식 실시! 여전히 똥국뿐이었지만 지금은 따뜻함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사실 복귀 후가 일이 더 많다. 중간 기수로써 내꺼만 챙기고 앉아 있을 여력이 없다. 대충은 없다. 자질구래하게 정리를 한다. 지시받고 지시하고 실행해야만 한다.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고 일주일 만에 수송버스에 올랐다. 타 대대 동기들이 추워서 고생 많았겠다고 한 마디씩 거들었다. 아무렴 어때! 살아 돌아왔고 끝났고 그렇게 2월이 다 갔는데...
 
18, 19, 20, 21, 22, 23 그렇게 혹한기를 뛰고 왔다. 정비는 25, 26 이틀이다. 그렇게 졸지에 2월도 끝났다. 내일 출근하면 부대 내 정비 작업이 있겠지만 그렇게 이번 주는 마무리될 것이다. 훈련을 마치고 난 뒤는 개운한 기분이 든다. 내 군생활 중요한 목표 중 하나를 또 이루었다는 점에서...
 
3월에는 중대 전체가 항공대 파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