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1월 4일 일요일 맑음 1924
진지공사가 마무리되었는데도 여전히 중대 복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취사장 인원들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한다. 물론 내 눈으로 보기에도 부족하다. 4명의 취사병이 2개 대대 총 800명의 식수 인원을 책임지고 있다. 중노동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가 누군가 휴가라도 가버리면...
중대장은 일단 기다려보라고 한다. 아무리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군대라지만 나로서는 취사장에서 내 군생활을 마치고 싶지는 않다. 졸지에 취사장에서 일병을 달다니...
1990년 11월 9일 금요일 흐리고 비 오다가 오후에 갬 2210
어쨌든 기록! 일단은 취사병의 일과를 보내고 있다.
취사장 근무는 일단 답답하다. 내가 액티브한 성격은 아니지만 취사장에 갇혀 있는 일과는 너무 답답하다. 게다가 제 때 퇴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함은 더욱 더하다. 취사장의 총인원은 6명이며, 2명씩 3개 조로 나뉜다. 3개 조 중에 2개 조는 근무를 하고 1개 조는 휴무! 출근한 4명의 인원은 이틀 연속 부대 내에서 머물면서 근무를 한다. 그리고 사흘 째 2명은 퇴근하여 하루를 쉰다. 그 사이에 쉬고 있던 2명이 출근을 한다. 그래서 어쨌든 늘 최소 4명의 취사 인원을 유지해야 한다. 사실 휴무라고 해도 온전히 24시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로테이션이 돌다 보면 일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 방위들은 출근하지 않지만 여전히 부대 내에 상주하는 현역들이 있으니까 밥은 먹여야지. 우리 부대의 취사병은 현역이 없다.
어제는 평소보다 늦게 취침해야 했다. 심지어는 현역들 점호시간이 끝나고서야 내무반에 들어갔다. 취사장에 누수가 발생해서 3시간 가까이 빗자루질에, 삽질에.. 대책도 없는 물 빼기 작업을 해야만 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수면 시간인데..
취사병의 일과
0400 기상
~0600 조식 준비, 시간 및 식수 인원 절대 엄수! 연대 현역들만 100여 명!!
~0730 조식 배식 완료 나도 식사 간혹 라면으로 때우기도 함
~1100 중식 준비, 식수 인원은 1대대 및 2대대 총 800명!! 워낙 많은 식수 인원으로 인해 1130부터 중식 배식 시작됨!!!
~1300 중식 배식 완료
~1400 잠시 쉰다
~1700 석식 준비, 동시에 내일 조식 및 중식 식재료 준비한다. 부식을 잡는다... 고 표현!!
~1830 석식 배식 완료
~2000 청소 및 뒷정리
2000 취침 (가능하다면)
이렇게 마무리되면 내무반에 올라가 씻고 취침을 한다. 보통은 내무반 들어가기 전에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마신다. 내무반 정비가 진행 중일 시간이니까 번잡스러움을 피하고 시간을 좀 벌고자 함이다. 어떨 때는 서글픈 맛으로 느껴진다. 아마도 피곤의 극한 상태이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그리 좋은 맛은 못 느낀다. 그래도 마신다.
본부 중대 내무반의 입구 쪽이 취사병들의 자리다. 현역들은 2200부터 취침이지만 새벽 기상해야 하는 취사병들은 2000부터 취침이 가능하다. 다만 현실적으로 다른 병력들이 내무반 청소하고 점호하고 하느라고 푸닥거리는데 편하게 누워 있기가 힘들다. 보통은 점호가 시작되면 그때 담요를 뒤집어쓰고 자리에 눕는다. 취사병들은 잠자리에 든 상태에서 당직 사관이 머리수만을 확인한다. 결국은 2200 되어 취침등이 꺼져야만 제대로 잠이 들 수 있다. 일단 그렇게 누우면 그냥 곯아떨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0400 다가오면 불침번이 취사병을 깨우기 시작한다.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 탓인지 계속 선잠이다.
그야말로 단순하고 지루하고 바뀔 것 없는 일과이다. 수면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200 취침하여 0300 기상을 하는 꼴이다. 확실히 지난 번 금학산에서도 느꼈지만 취사병들은 수면이 많이 부족하다. 게다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무거운 중량물들을 많이 취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근력이 제법 필요하다. 나로서는 좀 부대끼기도 한다. 또한 퇴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많이 부담이 된다. 아무리 한 달에 반은 퇴근하지 못하던 방위라고 하더라고 결국은 퇴근에 목숨을 거는 게 방위인데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싫다. 하루 쉬고 부대에 출근을 하는 기분이 그렇게 거지 같을 수가 없다.
물론 현역들은 계급을 막론하고 취사병을 간섭하는 일은 없다. 우리도 눈치 봐서 분위기 이상할 때는 알아서 피해 준다. 서로 보직도 완전히 다르고 같은 중대 소속도 아니고 방위이며, 더군다나 본인들의 끼니를 챙겨주는 사람들이니 섣불리 대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취사병들은 일 마치고 내무반 올라갈 때마다 건빵을 튀겨서 설탕에 묻히거나, 남은 닭다리라도 있으면 튀겨서 가져다주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나름 환영받는 존재인 듯...
다만 늘 냄새에 쩔어 있는 취사병들이다 보니 위생에 민감하다. 아무리 씻어도 그 짬내가 없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하여간 나는 이렇게는 싫다. 오늘 중대장님에게 복귀를 요청하였다. 내일이고 모레고 주말 내내 또 부대에 남아 있어야 되잖아.
1990년 11월 11일 일요일 흐림 1954
추워졌다.
한편으로는 아직 가을이기를 바라는 이 철없는 마음과는 아무 상관없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어차피 지나가야 할 시절이니 차라리 빨리 지나가라! 지독하게 춥더라도 빨리 지나가라. 어쨌든 국방부 시계는 돌아서 7개월이 흘렀다. 어휴~~
어제 석식에 갑자기 식수 인원이 추가 되었다. 3군단 기갑부대에서 훈련을 위해 이동 중인데 그 인원들이 주말 동안 우리 부대에 머무르게 되었단다. 취사병의 입장에서는 좀 짜증 나는 일이기는 하다. 긴급하게 2배 정도 늘어난 식수 인원에 대한 부식을 잡아야 했다.
다만 3군단 애들이 착하게도 자기들 부대보다도 더 맛있다고 인사를 해주는 바람에 위로가 되었다. 어차피 입발린 소리겠지만 그래도 맛없어 못 먹겠다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똥국에 양배추 김치가 뭐 그리 맛있었겠어. 그래도 오늘 메뉴는 짜장밥이었다.
무지 피곤하다. 제대로 잠도 못자고 있는데.. 오늘 밤도 제대로 자기는 힘들겠다.
1990년 11월 17일 토요일 맑음 2250
나는 이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왔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자신이나 확신은 없다. 어쨌든 내가 강력하게 원하던 데로 돌아온 것이다. 205 연대 1대대 2중대 2소대 화기분대 M60 부사수!!
지난주 내내 컨디션의 난조가 있었다. 계속 뒤바뀌는 환경 때문인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늘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상태로 거의 1주일을 보냈다. 게다가 취사병 중 1명이 휴가를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퇴근을 보류당한 채로 취사장 근무를 해야만 했다. 가끔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3군단 식수 인원이 추가된 것이 결정타였던 것 같다. 늘어난 인원으로 인해 또 추가 근무가 필요했다. 나는 사실상 거의 일주일 가까이 부대 내에서 퇴근은 고사하고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한 채 병력들의 식사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월요일 새벽 깨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대략 일주일여 만에 눈을 떴다. 국군청평병원이었다. 월, 화, 수, 목 그리고 금요일! 뭐, 기억은 못하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나 들었던 모양이다. 부모님이 병원으로 달려오시고, 사실상 일종의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모양이다. 기적이 필요했고 많은 분들이 기도를 해주셨고 그렇게 기적은 일어났다.
군의관은 나에게 일종의 코마 상태였다고 했다. 나는 전혀 모르겠다. 분명 내무반에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뜬 곳은 국군병원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심하게 소변이 보고 싶었고, 키가 매우 큰 의무병이 소변통을 가져다주었다. 여기서부터가 내 새로운 기억의 시작이다.
그러니까 나는 일요일 밤에 잠이 들어서 월요일 아침에 깨어나지 못하고 국군청평병원으로 후송되었으며, 목요일에 깨어난 것이다. 그렇게 정신이 돌아오고 목요일은 병원에서 관찰 좀 당하다가 금요일 오전에 사단 의무대 앰뷸런스를 타고 부대로 복귀했다. 월요일 후송될 때 입고 있던 내복 차림이었다. 의무병이 가운을 하나 건네주었다. 그 꼴로 중대 복귀를 하였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나의 후송 소식을 알고 있던 동기들의 걱정이 대단했다. 취사병 내무반에서 군복을 가져왔지만 짬 내가 너무 역해서 입을 수가 없었다. 군장에 넣어 두었던 A급을 꺼내 입었다. 비록 다림질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후줄근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헌병대의 조사를 받고 중대장과 면담을 하고 퇴근하였다. 부모님께서 부대로 나를 데리러 오셨다. 신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어쨌든 나는 원대 복귀를 하게 되었다. 바라던 바이다. 그 덕분에 취사장의 빈자리에는 우리 소대의 서형일이 들어간다고 한다. 취사장을 그렇게 가고 싶어 한 모양이다. 파견의 형식이지만 사실상의 전출인 셈이다. 나와는 다르게 이제 소대 내에서 그의 이름은 아예 없어질 것이다.
다음 주는 유격이란다. 이럴 줄 알았다. 여름 내내 국군의 날 행사 준비 때문에 올해는 유격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결국 실시한다. 그 여름에 유격장 보수 공사를 진행할 때 눈치채기는 했다. 확인사살! 짬짬이 탔던 유격코스들은 그야말로 예행연습이었던 셈이다. 다만 중대장은 나는 이번 훈련에서 제외라고 했다. 좋아해야 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제대로 군인이 되고 싶었는데 다 틀려 먹었다는 좌절감이 든다. 어차피 현역도 아니면서...
그래도 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일단은 멍해진 머리를 좀 쉬게 하자!
1990년 11월 18일 일요일 흐림 2009
어머니에 대하여, 그 지독한 헌신에 관하여, 일평생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난 그 앞에서 엄청난 죄인이다. 진실은 하느님만이 알고 계실 일이다.
쉽지 않다. 현역이었다면 쇠약해진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지는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모든 게 적나라하게 다 노출되어 버리는 상황이 더 힘든 것 같다.
어머니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한다. 내가 현역이었다면 죽고 나서야 집에 연락을 해줬을 거라는 이야기다. 월요일 퇴근 시간이 지나서도 소식이 없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고 수소문을 했고 한밤중이 돼서야 부대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한밤중에 기함을 하며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국군청평병원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는 것이다. 살아만 있으라고 기도를 하며...
일단 숨은 쉬고 있는 모습에 안심했지만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면회도 원활하게 진행이 안되고, 그렇다고 민간인이라서 머무를 수도 없는 상태로 어머니는 병원과 집을 매일 왔다 갔다 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데 그렇게 처막은 군 병원의 처사가 어이없기도 하다.
어쨌든 내일 또 새벽같이 일어나 수송버스를 타고 출근해야만 한다. 머리는 멍하다. 정말 이럴 때는 퇴근없이 부대 내에서 머무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1990년 11월 19일 월요일 비 2249
지금은 확실히 제 정신이 아니다. 집중력과 기억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느낌이다.
유격의 첫날부터 비가 내리눈구나. 무거운 머리를 부여잡고 중대 막사에 앉아서 하루를 보낸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오히려 마음이 더 힘들어서 살살 움직여가며 막사 청소를 했다. 힘들게 하루를 보낸 중대원들 보기가 민망하다.
1990년 11월 20일 화요일 맑음 2018
또다시 추워졌다. 어차피 겨울...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다. 큰 이상은 없어 보인단다. 그래도 큰 병원에 가보란다.
1990년 11월 24일 토요일 맑음 2021
계속해서 머리가 너무 아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나는 알고 있다. 위기의 돌파구는 결국 나 자신이다.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고 의병제대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이 전투를 내가 마무리 짓고 싶다. 그렇다면 그저 누워만 있어서는 안 되고 강력한 극복 의지로 일어서야 한다.
물론 여전히 때로는 하기 싫을 것이고, 좌절을 맛보겠지만 그냥 관 속에 들어가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다.
결국 그렇게 유격의 한 주가 끝났다.
1990년 11월 28일 수요일 맑음 2255
시간의 불공정성이라고나 할까? 나의 만족감의 실체와는 언제나 무관하게 지나가고 있다.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맘 같은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죽을 고비를 넘긴 자로써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원칙뿐이다.
긴장과 불안!
이틀의 정비 기간을 보내고 다시 만난 호준은 여전히 흙빛인 내 안색을 보고 불안해했다.
1990년 11월 29일 목요일 맑음 2155
포근한 날씨!
성훈에게서 편지가 왔다. 말로만 들어도 아찔한 칠성부대 수색대에서 잘 버티고 있다. 하기는 워낙에 건강한 녀석이니 뭐... 어쨌든 그와 내가 느낀 점이 일치함에 새삼스런 안도감과 위안을 갖는다.
오늘은 아픔과 고통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야 약발 받는 건가?
다가온 겨울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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