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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1991년 1월

rivervox 2024. 9. 5. 19:28

1991년 1월 1일 화요일 흐리고 비 1726

새해를 맞았다. 그 어느 때보다 무취의 새해 첫날이다. 다른 면으로는 그 어느 해보다 기억이 될 1991년이 될 것이다.

 

90년에서 91년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에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근무를 섰다. 라디오에서 타종 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한 것이다. 기원도 보았다. 희망의 새해, 나에게 희망의 날도 어서 오기를...

 

1991년 1월 3일 목요일 흐리고 눈 1330

복귀?

 

퇴근해서 취침 중에 중대장의 전화를 받았다. 뜻밖이었다. 다음 주가 정기 휴가이니 중대 복귀하란다. 그리고... 급 행복해졌다.

 

1991년 1월 4일 금요일 맑음 1708

어제 밤에 눈이 많이 내렸다, 덕택에 나는 2100 다 돼서야 출근했고... 우리 근무 편성은 난장판이 되었다. 로테이션 상관없이 먼저 출근한 사람이 먼저 근무에 투입되었다. 아찔한 경험이었다.

 

오늘의 출근이 야간경계병으로서의 마지막 근무이다. 오늘 밤 근무 후 내일 아침에는 퇴근하지 않고 바로 중대로 갈 것이다. 비록 밤샘 근무로 피곤하겠지만 토요일이니까 반나절만 잘 버티면 된다. 저녁에 직행버스 타는 것도 마지막이다. 정말이지 수송버스 타고 출퇴근하고 싶다. 그렇게 될 것이다. 내일자로 중대 복귀한다. 간절하게 원하던 바다.

 

아마 분대원들은 또 혼란스럽겠지. 그저 미안함뿐이다. 다행이라면 겨우내 큰 훈련이 없었다는 점이다. 비록 다음 달에는 또 혹한기를 뛰어야 하겠지만... 야간 근무를 서다 보니 분대원들과 연락할 타이밍을 전혀 맞출 수가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그렇게 잘 있으려니 했다. 아마도 복귀 소식도 알고 있겠지.

 

오늘 밤 근무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1991년 1월 6일 일요일 맑음 1740

드디어 처음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더 이상의 파견은 없다.

 

한 달여간 함께 한 사람들과도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아쉬워했지만 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결국 휴가에 맞춰서 중대 복귀한 셈이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타이밍이다. 복귀를 원했지만 마땅한 명분이 없었는데, 정기 휴가는 너무나도 완벽한 사유가 되어 주었다. 경계 근무라는 것이 단 한순간도 빵구가 나면 안 되는 것이니까 나의 휴가 기간 동안 대체인원이 필요했고, 사실상 대체가 아닌 교체인 셈이다. 이로써 나는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복귀를 너무나도 반겨주는 동기들이 있고, 중대, 소대 그리고 분대원들이 있다. 너무나도 미안하다. 그렇게 복귀하자마자 또 휴가라니.. 물론 정기휴가이기에 나말고도 동기들과 함께 휴가를 받은 것이지만... 이 어마어마한 은총에 감사해야 한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내일부터 첫 정기 휴가이다. 열흘! 길고도 짧겠지만 행복할 것 같다.

 

1991년 1월 7일 월요일 눈이 펑펑 2325

모처럼 편안한 저녁 휴식을 맞이하는 기분! 한동안 출근 생각을 할 필요가 되는 삶! 역시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더러는 후회도 하겠지.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

 

오전에는 호준과 만났다. 오랫만의 만남이었다. 지난 한 달간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학교에 들렀는데 엉망이었다. 이제 복학 전에는 학교에 가지 않아야겠다. 어차피 친했던 동기들은 대부분도 입대를 하고 썰렁하기만 하다. 뭐 하러 왔냐는 느낌도 있고... 그래 군바리가, 방위가 뭐 하러 학교를 들락날락 거려.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나 충실하게 해야겠다.

 

롯데백화점 레코드숍에서 음반 세 장을 사서 귀가한다.

 

1991년 1월 9일 수요일 흐름? 맑음? 1136

9개월 했고, 9개월 남았다. 정말로, 진짜로, 참으로 절반 왔다. 

 

기쁜 마음으로 대구로 향한다. 수재 만나러 간다. 새마을호를 타고 가기로 했다. 하루 밤 묵고 올라오겠지만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1991년 1월 10일 목요일 맑음 2300

이상하게 변한 친구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선천적 병으로 인하여 군면제를 받은 수재의 어제, 오늘의 모습은 나를 너무 화나게 했다. 이런 꼴을 보려고 그 비싼 돈을 들여서 대구까지 내려갔던 것이 아닌데... 맘으로는 어젯밤에 당장 올라오고 싶었지만...

 

오랜 기간 서로 다른 삶을 살아 왔던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임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책이나 읽고, 사놓고 미처 듣지 못했던 음반이나 들으면서, 그렇게 지내야겠다. 돈도 없고, 만남도 피곤하다. 

 

겨울이 너무 춥구나. 차라리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행군이나 하면 나으려나... 에잇 퉤 퉤 퉤~~

 

1991년 1월 11일 금요일 맑음 2304

시간의 마법이다.

 

그렇게 흐르지 않던 시간이었는데, 벌써 일주일이 지나갔다. 이런 식이면 나의 나머지 9개월도 빠르게 흘러가겠구나. 목욕을 다녀와서는 계속 잠만 잤다.

 

용감해지자. 군인으로서 용감해지자. 이 정도 했으면 용감해질 만도 하다.

 

1991년 1월 12일 토요일 맑음 2310

시간 여유가 생겨서 매일매일 꼬박꼬박 일기장을 채울 수는 있는데, 별 일은 없다. 그냥 집에서 뒹굴뒹굴! 생각해 보면 지난 9개월 동안 얼마나 꿈꾸던 시간이었나? 이토록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가 있는 일인가? 1초가 아깝지만 달콤한 시간들이다. 

 

친한 친구들마저도 다 입대를 하고 나니 아무것도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우리가 지키고 있다. 친구들, 동기들! 화이팅!!

 

1991년 1월 13일 일요일 맑음 2330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흐르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 만져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제 오늘이 지나고, 지금의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일이 잘 될 것만 같다.

 

내일 출근을 하지는 않지만 습관처럼 군복을 다린다. 언제나 저녁을 먹고 일밤을 보면서 혹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군복을 다리는 게 내게는 꽤 중요한 행위이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 그만큼 시간도 덜 걸린다.

 

이렇게 군복을 다리더라도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정말로 기쁘구나. 미리 준비해 놓으면 좋지 뭐.

 

하루가 저문다.

 

1991년 1월 14일 월요일 맑음 2310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은가? 이제부터의 시간동안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놓자. 지난 9개월의 시간은 무언가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들이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선택지도 없이 무조건 돌격해야 하는데 자꾸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끈기 있고 성실하고 인내력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남은 9개월 동안 잘하자. 9개월만 살고 끝나는 인생이 아니니까 그 이후의 삶을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준비를 계속해야 한다. 잘 견뎌나가고 준비하자.

 

오전 느지막한 시간에 호준에게서 온 전화 덕분에 자다가 깼다. 귀가 아파서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호준과 점심을 먹었다. 학교에 남아있는 군면제된 동기들이 연락이 와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1991년 1월 15일 화요일 맑음 2314

창호와 롯데월드 볼링장에서 볼링을 쳤다. 과동기 중 군면제된 2명 중의 한 명! 눈이 겁나게 나빠서 군면제! 근데 사실 힘쓰는 거 보면 나보다 훨 군인체질이다. 1년간 볼링을 열심히 쳤다고 하더니 폼도 멋있어지고 팔뚝은 더 굵어졌네. 자원입대를 권유했다. 그렇게 할리가...

 

1991년 1월 16일 수요일 맑음 2120

오늘은 일기를 일찍 쓰고 일찍 잘 것이다.

 

휴가는 이제 끝났고, 내일부터는 출근이다. 그리워했던 정상적인 일과로의 복귀인 것이다.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열흘정도 보지 못했다고, 아니 사실은 그 이상이지, 보고 싶은 얼굴들이 좀 있다.

 

1991년 1월 20일 일요일 맑음 2224

춥지만 맑은 날씨다.

 

페르시아만 사태가 세계를 긴장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래서 덩달아 우리도 긴장 중이다.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한다. 긴장하라니까 긴장해야지 뭐.

 

1991년 1월 22일 화요일 비 2115

문득 살펴보니 여기저기 성한 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글자 그대로 상처 투성이다. 맨날 뛰고 구르다 보면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를 상처가 제법 생긴다.

 

오늘은 빗길에 미끄러지며 슬쩍 삐져나와있던 썩은 나뭇가지에 긁혔는데 무릎에서 허벅지까지 제법 상처가 길다. 상처가 있는지도 모르고 좀 따끔하다는 느낌이었는데 퇴근해서 보니 샤워를 하려고 보니...

 

어머니 깜짝 놀람! 이럴 때가 가장 난감이다. 군인에게 이리저리 상처는 흔한 일상이지만 이렇게 눈에 띄는 커다란 상처는 좀 난감하다. 미리 알았더라면 안 보이도록 했을 텐데... 어머니는 혹시라도 고참에게 맞은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어차피 해명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마음속에는 이미 그런 의심이 확신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정신 차리자.

 

1991년 1월 23일 수요일 맑음 2205

연대장님이 새로 부임했다. 어차피 얼굴은 봐도 모를 일! 새삼스럽게 사단장님 자가용 번호, 신임 연대장님의 이름 그리고 새삼스럽게 복무규율에 관한 교육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짬이 나서 분대원들과 PX를 갔다. 새로 들어온 신병도 축하하고, 휴가 다녀왔으니 한 턱 내는 것도 있고, 인해가 자꾸 조르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나도 그렇게 분대원들 이끌고 PX 갈 수 있는 짬이 되었구나. 퇴근하면 먹을 수 있는 것들인데도 유독 군복 입고 먹으면 더 맛있다. 분위기 탓이겠지?

 

이제 슬슬 다음 훈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대별로 순차적으로 실시되는데 4-3-2-1 순으로 진행되면서 2월 셋째 주에 혹한기에 들어간다. 봄이 가까우니까 좀 덜 추우려나~~

 

4월이면 아들들이 들어올 것이고, 5월에 다시 200킬로 행군, 9월 제대!!

 

1991년 1월 24일 목요일 대설

어제까지의 맑았던 날씨를 생각하면 참 뜻밖이다. 엄청난 양이 눈이 내렸다. 

하루 종일 눈치우느라고 고생 좀 했다. 쓸고 밀고 쓸고 밀고... 이겼다고 할 수 있나?

 

퇴근 버스 안,

"내년 겨울에는 눈이 아무리 많이 내려도 애들 보고 치우라고 안 할 거야"

"흠, 내년 겨울에도 여기 있으려고?"

깔깔깔~~ 이걸 농담이라고 떠들고 웃고 있다.

 

결국 오늘 한 일은 내리는 눈 맞으면 눈 치우기가 다였다.

 

1991년 1월 26일 토요일 맑음 2315

겨울이니까 춥다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춥다고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즐거운 주말이어야 하는데, 달랑 4시간만 버티면 퇴근하는 그 와중에 8기 선임 이광명이 집합을 걸었다. 생각해 보면 별일도 아닌데, 결론은 밑에 애들 제대로 못 다룬다고...

 

보기 나름이다. 당연히 고참들이 보기에는 아래 것들은 늘 군기가 빠져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욕하고 때리고 갈구는 것이 맞아? 우리는 서로 간에 그럴 권리가 없다. 너랑 나랑은 나이 차이가 1개야. 형이라고 불러 줄 수도 있지만 친구일 수도 있어. 그런 사람들끼리 단지 입대일이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행하는 것이 말이 돼?

 

중대 선임 기수가 되면 늘 선언을 한다. 더 이상 구타는 없다. 나 때는 많이 맞았지만 지금부터는 그런 거 없다. 구타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나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줄어들기는 했다. 확실히 자대배치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면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암암리에 구타가 있고, 얼차려가 있고, 갈굼을 당하는 일은 지속되고 있다.

 

분명히 줄어들었지만 분명히 부대 내 구타는 존재한다. 오늘 이 말을 꼭 적어놓고 싶었다.

 

주말이다. 퇴근한 이상 부대에서의 좆같은 일은 모두 잊어버리기로 하자. C8 것들!!

 

1991년 1월 27일 일요일 맑음 2150

여전히 일요일을 보내는 마음은 아쉽다.

 

10개월 가까이 늘 해오던 데로 저녁을 먹고 나서 군복을 다린다. 훈련이 없는 주말이라면 늘 퇴근할 때 군복을 챙겨 오고 빨아 두었다가 일요일 저녁 시간에 군복을 다린다. 두 벌 중에 유독 이 한 벌에만 올인을 하는 바람에 이제는 대충 손으로 만져도 주름이 바짝 서는 느낌이다. 색깔도 바래지고... 바래진 색깔이 그동안 해온 군생활을 상징하는 것 같다. 군복이 질기기는 하다. 그렇게 험하게 입고 구르고 문지르고 빨아 재꼈는데도 여전히 크게 터진 곳 없다.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다림질을 하는 이 시간은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조만간 행해질 여러 가지 훈련들! 이미 계획된 것만 해도 가깝게는 혹한기에서부터 좀 더 멀리는 진지공사! 어제 지랄 떨던 이광명!! 절반 이상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멀어 보이는 제대일! 지겹다. 일요일 저녁의 이런 무거운 기분은 언제쯤 덜어질까?

 

내일도 0500에 기상하여 수송버스를 타고 졸다가 연병장에 내려서 중대 막사를 향해 걸어간다. 여전히 나의 도착시간은 중대 내에서도 빠른 편에 속한다. 우리 지역의 수송버스 운행 시간이 그렇다. 좀 늦게 출근하고 싶으면 천호동까지 가야 하는데 그게 더 번거롭다.

 

줄 잡은 군복을 곱게 접어 가방에 넣는다. 이제는 자자!!

 

1991년 1월 30일 수요일 맑음 2052

윤철이 휴가 나왔다.

 

간만인데 20킬로 행군했다. 겨우내 훈련이 거의 없이 실내에서만 복작되었는데, 이제 2월부터는 다시 시작될 훈련들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뭐 단독군장이니까 크게 부담되지는 않았다. 다만 군장 없이 M60 만 매고 가면 오히려 자세가 안 나오니까 더 힘들다. 군장이 있으면 군장 위에 얹어서 가면 되는데 그냥 총만 매고 행군을 하면 너무 자세가 안 나온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무겁고 몇 분만 사격하면 총열을 교체해줘야 하는 이런 기관총이 실제 전장에서 얼마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건지... 월남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하니 쓸 데가 있겠지. 지금은 무겁기만 한 녀석이지만...

 

그래도 중대 기준으로 보자면 박격포와 더불어 중화기니까 편제 상 너무 중요한 무기 이기는 한데 실용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내게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