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1일 금요일 맑음 2137
시간은 언제나 자신만의 속도로 흐르고 있다. 귀한 하루하루이지만 어떻게 되었든 빨리 지나가기를 매우 진지하게 바라고 있다. 언제인가 오늘을 추억이라고 부를 그때가 오기를...
하루하루 죄를 짓고 있다. 타인이 잘 되는 것을 보며 질투와 저주를,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기쁨과 안도를... 참으로 못된 인간이다. 왜 이렇게 나 자신이 이기적이고 거칠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원래 그런 인간이었나? 군복을 입고 난 후의 변화인가?
반성하고 회개할 일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이중인격의 위선자가 되었는지...
이제 다시 예전 리듬으로의 복귀가 필요하다. 출근하고 일과하고 퇴근하고...
3월이 가고, 4월이 오고...
3 4 5 6 7 8 9... 211일
1991년 3월 2일 토요일 맑음 2125
또 다른 시작! 군대는 참으로 다양한 일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오늘부터 107항공대 파견이다. 중대 전원이 한 달간 107항공대 외곽의 야간 경계 근무 임무를 수행한다. 중대는 두 개조로 나뉘어서 24시간 근무, 24시간 휴식하며 맞교대하는 방식으로 출퇴근을 반복하게 된다. 덕분에 한 달 동안 중대는 반으로 나뉘어 돌아간다.
출근하자마자 완전 군장을 하고서 107항공대까지 행군하였다. 행군이라고 할 것도 없는 거리였다. 목식 사격장 고지 너머에 있는 107항공대까지는 1시간 남짓이면 이동가능한 거리다. 모두들 가벼운 맘으로 이동하였다. 지난달부터 파견 근무 중이었던 12중대 인원과 교대하였다. 나는 B조에 편성되어 오늘은 정시 퇴근하였다. 내일 오전 8시까지 출근하여야 한다. 그렇게 24시간을 보낸 후 모레 오전 8시에 퇴근하게 될 것이다.
덕분에 주말도 없겠다. 그저 남들이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는 것이 평범한 작은 행복인데, 이번 달에는 포기다. 그래도 지난 겨울의 파견 근무를 생각하면 이 정도면 최선의 상황이다.
오늘도 그저 하라는 데로 한다.
1991년 3월 4일 월요일 맑음 2137
어떤 식으로든 세월은 갈 것이다. 난 거의 매일 시간타령을 하고 있지만 내가 숨만 쉬고 있어도 1991년은 계속 흘러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그 가을을 기다린다.
어제는 107항공대에서의 첫 밤을 보내고 오늘 아침에 퇴근했다. 출근은 덕소역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덕소역에서는 부대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물론 퇴근길은 그 반대가 되겠다. 즉 덕소역에서 전일 근무자와 교대를 하게 되는 셈이다.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107항공대 현역들과의 분위기가 그닥 좋지 않다. 방위를 무시! 혹은 짧게 하는 군생활에 대한 질투!! 우리는 너희들의 군생활을 돕기 위해 온 사람들인데 왜 그렇게 미워하는 게 느껴지는지... 그래봤자 어차피 우리는 매일 퇴근하는 사람들이니까 너희들의 반응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리라. (마태6:34)"
1991년 3월 6일 수요일 맑음 2040
안개가 자욱한 아침이었다. 어제 아침도 오늘 아침도 그랬다. 나는 같은 날의 아침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시간의 착각에 빠져 있었다.
역시 경계근무는 피곤하다. 그냥 경계 근무만 서는 것이 아니라, 주간에는 일상적인 교육 훈련을 수행하느라 야간에 근무를 설 때는 피곤한 상태로 임하게 된다. 경계 근무라는 것이 지루하기도 하고 결국은 잠을 설치다가 끝나는 일이기 때문에 피곤할 수밖에 없다. 매일 불침번을 서거나 경계 근무를 서는 현역들이 보면 웃긴다고 하겠지만 우리로서는 새롭게 적응해야할 부분들이 있다.
그래도 정말 마음에 드는 점은 출근했다가 퇴근하면 이틀이 흘러 있다는 것이다. 내일 출근했다가 돌아와서 눈뜨면 8일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것이다.
그에게서 의를 구한다.
1991년 3월 8일 금요일 비 그리고 눈 2119
3월, 봄을 너무 이르게 맞이한 걸까?
꽃샘추위라는 단어는 이쁘지만, 경험하기에는 달갑지 않다. 어젯밤부터 내리던 비가 눈으로 변하더니 오늘은 종일 진눈깨비가 휘날렸다. 소란스러운 봄날씨였다.
일단 출근하면 이틀씩 깨지는 상황이다 보니 시간이 잘 가고 있다. 그러나 밤잠 못 자는 일과라서 기본적으로 피곤함을 달고 있다. 그래도 지난겨울 혼자 버텼던 수송부 파견 경계 근무보다는 훨씬 상황이 낫다. 그때는 불과 12시간 휴식 후 출근이었으나 이번에는 24시간 휴식 후 출근이니까... 게다가 중대 전체 파견이기 때문에 외롭지는 않다.
출근을 하여 주간에는 일상적인 일과를 진행하고, 야간에는 경계 근무를 최소 4시간 정도는 서게 된다. 출근하면 현역들의 내무반 생활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 퇴근 후에는 자유시간이지만 출근 후에는 107항공대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석식 후 개인 정비 시간을 갖다가 내무반 청소하고 점호받고... 어차피 훈련 나가면 하던 일이니 낯설 것은 없다. 그러고 나서는 사실상 우리의 주임무인 야간 경계 근무 작전에 투입된다.
203일, 난 그 시간 후에 자유인이 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자유로울 것이다. 적어도 기대하기로는 그렇다. 새 학기가 시작된 요즘 캠퍼스에 대한 그리움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어서 복학했으면 좋겠다. 복학한다고 무조건 잘 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잘될 것 같다.
오늘도 난 이곳에서 버틴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저 군대일 뿐이다.
1991년 3월 10일 일요일 흐림 2139
계속해서 날씨가 좋지 않다. 눈 오고 흐리고 비 내리고... 어젯밤은 제법 쌀쌀했다. 겨울의 추위는 아니었지만 꽤 쌀쌀했고 춥다라는 말을 해야 할 정도였다.
아침에 퇴근을 해서 집에 도착하면 어영부영 점심 무렵이 된다. 일단은 간 밤에 자지 못한 잠을 보충한다. 사실상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퇴근을 하다 보니 일단 잠을 잘 수밖에 없다. 물론 부지런을 떨어서 사람을 만나거나 볼 일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다른 약속을 안 만들고 잠을 청하게 된다.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영락없는 방위의 일상이다.
어차피 내일은 다시 출근할 것이고, 모래는 힘내서 학교에 가 볼 계획이다. 어디까지나 계획이다.
사람들은 전혀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우선이다. 조금씩 양보하면 조용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인데도 굳이 확전을 하게 된다. 어려서일까? 하기는 내가 없다면 다른 것도 의미가 없으니까... 남들의 이기심을 보며 혀를 차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확실히 107항공대의 현역들은 방위에 대하여 우월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자신보다 무언가 부족해서 방위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매일 퇴근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우리는 파견이니까 어쩔 수 없이 107항공대의 식당을 이용하게 되는데, 괜한 꼬장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대마다 운영 현황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기에 그 부대의 방침을 따르는 것이 맞겠지만, 원활하게 협조가 되는 느낌은 아니다. 우리가 본인들의 부대를 도와주기 위해서 온 것임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조만간 서로 간에 되게 큰소리 한 번 날 것 같다.
어제도 근무 보고를 받는 현역 일직 사령과 잠시 충돌이 있었다. 일단 소대장과 중대장님에게 보고가 진행되었으니 두고 보자.
1991년 3월 12일 화요일 맑음 2135
아마도 오늘은 맑았을 것이다. 낮에 취침을 하다 보니 정확히 확인이 안 되기도 한다.
여전히 겨울의 잔영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지난 사나흘 간 흐리면서 눈과 비가 내리고, 쌀쌀함이 이어졌다. 특히 산 중에 있는 부대 특성상 이제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잔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어서 지난겨울의 잔해를 떨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직 꽃샘추위도 한 번 정도는 더 다가올 테고... 그래도 오래되지 않은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 경훈의 긍정적인 자세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현역으로써의 힘든 군생활을 잘 버텨내고 이제는 하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그를 보며 나의 부정적인 자세가 하나씩 비교되어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역시 삶은 긍정적,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
이젠 200일이 깨지고 있다.
1991년 3월 14일 목요일 맑음 2124
시간 흐름이 조금 흐트러지고 있다. 48시간 단위로 생활이 돌아가다 보니 문득 시간을 놓친다. 거기다가 늘 밤에 깨어 있다 보니 늘 똑같은 어둠을 보게 된다. 일기장에 메모를 하면서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를 새삼스럽게 인지한다.
이기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쉽지 않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버티자.
1991년 3월 16일 토요일 흐림 2051
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우리 땅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하늘이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어제는 주간에 축구를 했다. 하필이면 나에게 골찬스가 왔으나 헛발질! 나는 개발임을 전 중대에서 공인받았다. 솔직히 축구를 해본 적도 없으니 그게 될 리가 있냐고... 비록 소대원들은 축구에 진심이었으나 어쩔 수가 없다. 쪽 팔려서 더 할 말이 없구나.
1991년 3월 18일 월요일 흐림 2134
사소한 상념에 잠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깊은 밤 잠에서 깨어나 근무 교대를 하기 위하여, 일훈이랑 근무지로 향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많다. 서울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곳이지만 나름 산 중인지라 별이 많다. 문득 확실히 겨울은 끝났다라는 확신이 든다. 제 아무리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분다고 하더라도 분명 겨울의 그것은 아니다. 물론 여전히 야외에서 밤을 새우는 것은 춥고 배고픈 일이기는 하다.
지난 봄을 생각해 본다. 아마도 난 작년 이맘때 영장을 받았던 것 같다. 이왕 갈 곳이기에 얼른 다녀와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빨리 진행되기를 기다렸지만 막상 영장을 받아 들고 보니 참으로 난감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이젠 또 다른 한 세대가 영장을 받아 쥐고 상념에 빠져 있으려니... 그것이 이 좁은 땅, 분단의 나라에 사는 남자들의 반복되는 업보인 것이다.
어서 파견이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역시 크던 좁던 내 것이 최고다.
1991년 3월 20일 수요일 흐림 2255
어젯밤은 따뜻했다.
근무자 신고 시간에 깨졌다. 암구어도 미처 숙지하지 못했고, 복장도 엉망이었고... 일훈을 너무 믿었던 게 탈이다. 늘 잘하던 녀석이었는데, 어쨌든 내가 잘 챙겨야 할 일이었는데, 군생활을 1년 가까이 해온 주제에 쪽팔리게 되었다.
평소 우리를 보면 눈을 흘겨 뜨던 일직 사령이 아주 날 잡았다. 자기네 애들한테 하듯이 주먹을 휘둘렀고, 큰 소란이 있었다. 물론 경계병으로써 준비가 미흡했지만, 정해진 절차에 따르지 않은 그들의 잘못이 작지 않다. 본인의 실수를 덮기 위해 우리에게 억지를 쓴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기에 따졌고 소란이 벌어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구타라는 것은, 더군다나 타부대의 사람에게 폭력행사는 정말 영창이나 군교도소감 아닌가?
근무 시간 내 일훈은 안절부절이었다. 그러나 탓할 일은 아니었다. 결국 그 상황에서 고참은 나였기에 내가 우선 책임지는 것이다.
퇴근하면서까지 눈치를 보며 나의 심기를 살피던 일훈에게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면 돼."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다시 출근해 보면 알겠지.
1991년 3월 22일 금요일 흐림 2125
윤철이 집에 왔다. 팀스피리트 91 훈련에 참여했다가 잠시 외박이었다.
함께 학교에 갔다. 남아 있는 동기들은 4명뿐! 친하던 후배들 마저도 입대했고, ROTC로 남아 있는 90학번 몇 명과 어색한 91학번만 만날 수 있었다. 어차피 내가 복학하면 91학번 애들은 상당수가 입대해 있을 테고... 어쩐지 나는 이곳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연하지만 그만큼 내가 지금 속해 있는 곳과의 괴리감이 크다. 그냥 짧은 머리에 군복 입고 있는 윤철과 노는 것이 가장 편하다. 이방인!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보통은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저께의 소란은 양쪽 간부들끼리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합의로 끝내기로 했다. 부당한 행위에 대한 사과는 없었고 그냥 없던 일이 되었다. 구타 시도에 대한 사과도 없으니 쌍욕에 대한 사과도 없다. 개C8 호로새끼같으니... 하사가 무슨 벼슬이라고...
1991년 3월 24일 일요일 맑음 2119
믿을 수 없게도 A조 병력 중에서 근무 서다가 귀신을 봤다고 한다고 한다.
후문 쪽 초소에서 공중에 떠오는 귀신을 보고 두 사람이 모두 기절을 했단다. 근무 교대자가 해당 초소에 도달했을 때 수하도 없고 해서 이상하다 생각하며 올라갔는데 둘 다 기절해 있더라는...
아이고야, 그 이야기를 듣고 어젯밤 경계를 서는 우리도 긴장했지만 별 일은 없었다. 뭐, 새로운 중대가 올 때마다 꼭 한 팀씩을 놀래킨다는데 그게 하필... 다행인지 불행인지...
선인이 제대했다. 1991년 3월 23일 자로 축하한다. 결국 그렇게 시간이 가기는 가는구나.
1991년 3월 26일 화요일 비
매우 단조로운 이 경계 임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자극 없는 일상에 중대원들은 지루해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걱정하기도 한다. 5월로 예상되어 있다가 4월로 확정된 훈련 때문이다. 행군 & 진지공사를 떠나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훈련이기에 적절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행군은 어느 정도 미리 대비를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 된다. 중대 인원의 절반 이상은 그 기막힌 200킬로 행군의 경험이 없으니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생각해 보면 말뿐이지 제대로 대비했던 적도 없었다. 첫 행군은 자대 배치받은 당일 날 떠났으니 정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신병으로써 뭣도 모르고 따라나섰다. 두 번째 행군도 역시 국군의 날 행사 준비를 하느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일주일 정도의 짧은 준비 후에 떠났다. 이번에도 대충 보름 정도의 시간뿐이다. 결국 늘 이런 식으로 해왔던 것이다. 그냥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맞닥뜨려 왔던 것이다.
결국 걱정은 그저 걱정일 뿐 닥치면 다 한다. 무서워할 것이 없다. 경험하면서 천천히 해결해 나가고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렇게 오로지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세월을 한탄하랴, 삼팔선의 봄!"
여전히 185일 남았다.
1991년 3월 28일 목요일 흐림 2030
지난밤은 제법 쌀쌀했다. 봄날씨가 변화무쌍이다. 군복을 입고 있어서인지 날씨 변화에 민감해진 듯하다.
몸이 다소 무겁다. 한 달간의 주야가 바뀐 근무의 피로도가 누적되는가 보다. 그나저나 이젠 이 근무도 끝이다. 그럭저럭 한 달이 또 지나갔다. 물론 하루하루는 지겹고, 지나고 보면 어느새 한 달 이런 느낌은 여전히 똑같다. 내일의 근무를 마지막으로 토요일에는 중대가 복귀할 것이다. 한 달 동안 두 개조로 쪼개어져 제대로 얼굴을 보지도 못한 중대원들이 이제 다시 뭉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행군을 떠날 것이다. 장열하구만~~
1991년 3월 30일 토요일 맑음 2237
도저히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던 항공대의 파견 근무도 끝났다. 지루했지만 편했다.
오전에 6중대와 임무 교대를 하고 행군으로 중대에 복귀를 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절반이다. 중대 막사 앞에 모여 2중대 화이팅을 외치며 마무리했다. 다시 함께라면 새롭게 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일상적인 중대 생활로의 복귀다. 사격, 행군, 태권도, 전술훈련 등등. 이제는 정말 6개월 남았다. 어찌어찌 1년을 잘 버텨 왔으나 남은 시간은 여전히 길게만 보인다. 그 세월도 지나가기는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좀 더 용감하게, 제대로 남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오늘따라 경훈에게 전화가 오고, 윤철에게 전화가 오고, 태영에게 전화가 왔다. 모처럼 다시 합친 호준이와 퇴근하여 함께 집으로 와서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가 외롭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음일까?
경훈의 목소리는 매우 힘들었다. 이제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군복무가 피곤한 듯하다. 상병에서 병장은 건너뛰고 분교대를 거쳐 하사를 달고 보니, 기존의 고참이었던 병장들이 부하가 되는 상황이 되면서 당연히 트러블이 많다. 물론 군생활 잘하니까 단기 하사를 시키는 거겠지만 기존 나의 쫄다구였던 놈이 갑자기 상관이 돼서 나타나는 꼴이니... 왜 그런 식으로 단가하사직을 운영하는지 모르겠다.
윤철의 이야기는 절망적이고 분노가 느껴지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대했지만 그는 여전히 절반을 채우지 못한 군생활이다.
아, 우리의 슬픈 젊은 날! 젊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남자라는 이유로 갇혀서 자유의지에 반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어서 시간이 흘러서 새로운, 자유로운, 적어도 지금보다는 자유로운 그 출발선 상에 다시 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남자라면 함부로 울면 안 된다고 했지만 가슴으로라도 흘린 눈물이 적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지금은 우리들에게 그런 시간이다.
힘을 내자!!
1991년 3월 31일 일요일 맑다가 흐려지고 눈
다시 꽃샘추위!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은 거 아닌가? 눈도 내리고 공기가 제법 차갑다.
하나의 덩어리로 보면 순식간인데, 하루하루는 지겹다. 지난 1년이 그랬고, 앞으로의 6개월이 그럴 것이다. 다 겪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으려나?
오랜만에 일밤을 보며 군복을 다린다. 이 짓도 어언 1년여를 해오고 있구나. 이제는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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