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one/army

3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1990년 10월

rivervox 2024. 8. 16. 17:36

1990년 10월 1일 월요일 가랑비 2008

행사는 끝났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 시원하다!

난 어디쯤 있었을까? (출처:유튜브 KTV 아카이브)

국군의 날 대통령 하사품으로 빵과 과자로 가득 찬 간식 박스를 받았다. 크림빵이 제일 맛있네. 지난 주말 내내 쉬지도 못한 보상으로 정비가 주어져야 하지만 추석 연휴와 이어지니 다 날아가 버렸다.

 

나의 군생활 2막은 이제 시작된다. 10월 15일부터 행군과 진지공사다. 또 200킬로 행군을 해야 한다. 카드 섹션으로 몸이 되게 느슨해진 거 같은데 이제는 행군을 대비해야 한다. 더군다나 5기부터는 처음 참여하는 훈련이기에 우리 4기의 책임이 막중하단다. 당연하게도 절대 낙오자가 발생해서는 안된다는데, 열심히 해야 하는 기수라고 고참들의 성화가 대단하다. 늘 하던 짓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 지난봄 행군에는 우리 기수가 막내로 신교대에서 나오자마자 참가했으니 그 이후 기수는 우리가 이끌어야 한다는 식이다. 군생활 6개월 했으면 열심히 하기는 해야겠지. 우리 밑으로 4개 기수나 있다. 10월 군번들은 운이 좋게도 아직 신교대라서 이번 훈련은 건너뛰겠네.

 

남들 이야기할 것 없이 내가 문제다. 열심히 해보자!! 사실 나 말고 분대원들은 다 든든하다. 내 바로 윗선임인 경일은 고등학교 후배다. 그렇게 바짝 마른 친구를 왜 화기분대에 편성해 놨는지. 그러나 영재나 인해는 든든하다. 아마도 나보다도 더 잘할 것이다. 나에게는 더할 나위도 없이 깍듯하기도 하니 참 고맙기도 하다.

 

이제 이번 연휴가 끝나면 매일 같이 행군이 진행될 것이다. 열심히 잘...

 

1990년 10월 8일 월요일 맑음 2117

날씨가 한층 더 차가워졌다.

 

이제 다음 주면 대망의 200킬로 행군과 진지 공사! 국군의 날 행사 준비하느라 여름 내내 제대로 체력 훈련을 하지 못했다. 국군의 날 이후로도 추석 연휴가 이어지다 보니 예비 행군을 할 기회가 너무 부족했다. 실질적으로 가능한 준비기간은 불과 5일뿐! 낙오가 없어야 할 텐데...

 

동기 중 유일한 육방인 녀석이 오늘 제대했다. 조용하게 사라졌다. 보통 육방의 제대는 그렇다. 남의 자들의 축하와 질시를 받으며 티 안 내고 사라진다. 그래도 지난 봄 그 힘든 200킬로 행군을 함께 한 친구니까 축하해 줬다. 잘 살아! 부럽다!! 

 

오늘로써 입대하고 6개월째 되는 날이다. 이제 다음 달이면 일병을 달게 된다. 그야말로 이병말이네. 달라질 거는 없겠지만... 여전히 끊임없는 훈련과 갈굼이 이어질 것이다.

 

이제 정말 1년 남았다.

 

1990년 10월 10일 수요일 맑음 2104

가을치고는 무척이나 추웠다.

 

오늘은 20킬로 예비 행군! 이 정도는 이제 일도 아니다. 출근해서 퇴근하기 전까지 몸풀기 적당한 거리다. 다음 주 출발 전까지 매일 반복해야겠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할 것 같다.

 

문제는 M60이다. 10.432㎏이라는 무게는 장난이 아니다. 사실 진짜 무게는 측정해 본 적 없어 모르겠다. 교범에 그렇게 쓰여있으니 맞겠지 뭐. 게다가 1 총과 2 총이 있다. 즉 분대에 기관총은 2대! 8시간 정도의 행군이라면 분대원끼리 1시간씩 번갈아가면서 짊어지게 된다. 결국 3~4시간에 한 번씩이다. 만만치 않다. 게다가 예비 총열도 챙겨야 한다. 그것도 제법 무겁다. 솔직히 전쟁이 난다면 이 쇳덩어리 들고 가다가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다. 

 

그래도 영재나 인해는 깡으로 잘 버틸 것이다. 그러나 역시 200킬로라면 모든 것이 초기화되는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오늘같이 퇴근이 담보되어 있는 날의 행군이라면 행복하다. 죽어라 걷다가도 어차피 퇴근 시간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러나 이제 다음 주의 행군은 다르다. 매일 10시간 이상을 이틀 내내 걷는다는 것은 한계를 넘어서는 인내를 필요로 한다. 사실은 육체적인 힘보다는 정신력으로 버텨내는 일이다.

 

경험적으로 행군 시작 후 4시간까지는 기본 체력으로 버텨진다. 그러나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지속적인 행군은 어차피 제정신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앞에 가는 사람의 뒤꿈치만을 쳐다보며 멀어지거나 놓치지 않도록 바쁘게 걸음을 놀려야 한다. 50분 행군에 10분 휴식이지만, 휴식 후 다시 출발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군장 20에 기관총 10을 더해서 가야 하니까 이번 행군은 확실히 힘들 것이다. 하기는 어차피 지친 몸에 10을 더  얹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1990년 10월 11일 목요일 맑음 2040

갑자기 대대식당으로 파견이다.

봉변이다. 나도 그렇고 분대원들도 그렇고...

 

이번 훈련 대비해서 식당의 취사병이 부족해서 지원형식으로 파견되는 것이다. 이건 제대로 봉변인 셈이다. 일단 명령에 따르겠지만... 불과 4일을 앞두고...

 

1990년 10월 13일 토요일 맑음 2125

할 말이 없네. 아 금학산!

어질어질하네. 아 금학산!!

썅놈의 금학산!!!

 

1990년 10월 28일 일요일 맑음 2020

귀신같이 보름의 시간이 흘러갔다. 졸지에 취사병으로 이번 훈련에 참가했다. 적성에 안 맞았다. 그냥 총 들고 삽 들고 뛰어다니는 게 더 낫다. 다만 취사병의 임무도 절대 쉬운 것은 아니며, 취사병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보름의 시간 동안 사실상 수면의 시간이 없었다.

 

2개 대대 병력 800인분의 식사를 취사병 6명이 해결해야 되는 거니까, 거의 무한대의 적과 싸움을 하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지원이 필요했구나. 훈련 혹은 전쟁에서 식사 추진도 중요한 사항이기는 하지. 이동형 찜밥기로 밥을 하다 보니 한꺼번에 충분한 양만큼의 취사가 불가능했다. 부대 내에서라면 0400 쯤 일어나서 2시간 정도 준비하면 된다고 했는데, 야전에서는 2시쯤 일어나야 6시까지 준비를 마치고 일과 시간에 맞춰 식사 추진이 가능했다. 대대 본부 대형 텐트가 숙소였지만 그 안에 들어가서 쉴 수 있는 시간이 하루 4시간도 안된 것 같다.

 

대대원들에게 조식이 추진되는 동안에는 이미 중식 준비에 들어가야 하고, 그렇게 중식 배식까지 끝나야 약간의 쉬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다. 최대로 짜내면 2시간 정도... 거기다가 부식 추진 임무도 해야 하니까 하루하루 지내고 나면 기진맥진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밥을 못 먹었냐며 깜짝 놀라기도 했다. 놀랍게도 보름 만에 8㎏ 정도 감량이 되었다. 살 빼기로는 최고로구나. 게다가 씻지도 못하는데 온몸은 짬내로 완전 하수구가 되었다.

 

식관 세척을 위해 취사장 근처 개울까지 내려온 동기들도 내가 풍기는 냄새에 기겁을 했다. 하긴 입으로 들어가면 음식이지만 뒤로 나오면 똥이잖아. 그래도 어느새 6개월 차라고 식사 추진 등의 임무를 동기들이 맡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취사장 내려올 때면 이것저것 쟁여 놓았던 것들을 챙겨 주었다. 남는 맛스타나 취사병 먹으려고 건빵 튀건 거 챙겨 들고 분대 텐트를 찾았다 너무 미안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너무나도 고생했을 분대원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그럼에도 반갑게 맞아줘서 고맙다.

 

훈련 마지막 날, 돼지를 잡았다. 주변 마을에서 살아 있는 돼지를 사 왔단다. 돼지 잡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대대 인사계가 잡았다. 몇 번 해 본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해머로 돼지의 정수리를 몇 번 세게 내리쳤더니 돼지는 똥을 싸대며 죽었다. 인사계는 돼지 불알을 챙기더니 취사병 고참에게 따로 잘 챙겨놓으라고 했다. 돼지는 통째로 삶아서 수육이 되었다. 우리 중대 식사 추진을 내려온 최 상병과 동기들에게 더 맛있다고 하는 부위를 더 많이 퍼 주었다. 취사장 고참들도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그래도 되냐고 하니 그러라고 했다. 이것도 권력이라고 없는 힘이지만 좀 써봤다. 그걸 본 중대 인사계가 엄지 척을 해준다. 어차피 대대 전체가 먹기에 부족함은 없는 양이었다. 대대 인사계는 불알을 챙겼다. 나는 이번 훈련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복귀길은 그야말로 완전 거지꼴이었다. 두돈반 트럭 뒷자리에 타고는 편하게 복귀하기는 했다. 다만 호로도 치지 않은 상태로 달리다 보니 매우 추웠다. 그렇게 차량으로 두어 시간 정도면 가능한 거리인데 이틀을 걸어서 복귀해야 하는 상황에 어이가 없었고 분대원들에게 미안하다. 복귀길에 2 총을 슬쩍 챙겨서 왔다. 걸리면 큰일 날 일이지만 그 무게라도 줄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티 안 나게 가지고 왔다.

 

그야말로 또 정신줄 놓고 미쳐버린 보름의 시간이 흘러갔다. 새삼스레 군대에서 편한 보직이란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죽을 듯이 백, 이백 행군을 해야 하는 병사들이나, 보름을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하고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병사들이나 그렇게 이 악물고 18개월을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 수많은 청춘들이...

 

모르겠다. 이 희생이 충분한 보답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어떤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방위라고 비아냥 거린다. 나라와 겨레를 지키고, 사랑하는 가족을 지킨다는 거대한 명분은 현실적인 고난 앞에서 잊힌다. 살아남기 위해서 혼자만의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이것보다는 좀 더 나은 방법은 정말 없는 건지 모르겠다.

 

군복을 입고 있다 보면 확실히 우리나라는 여전히 가난한 나라라고 느껴진다. 특히 이번 훈련에서는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올림픽이 끝나면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 되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물자들은 오래되어 625 때 쓰던 수통이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고, 먹는 것들은 부실하기 짝이 없어서 맨날 똥국에 양배추 김치라니...

 

그래도 3분의 1이 지나갔다. 그런 면에서 이런 훈련도 좋은 면이 있다. 시간이 한꺼번에 사라져 있는 느낌!!

그저 국방부 시계가 더 빨리 돌아가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여전히 눈 떠보면 갈 길은 아득!!

그리고 이제 수요일까지는 정비!!

 

금/학/산, 그 험난함의 시작과 끝!

 

1990년 10월 29일 월요일 맑음 2032

어제도 하루 종일 잠만 자다시피 했지만 오늘도 여전히 시체처럼 누워 있다. 

 

지금 무엇이 두려운가? 목요일 출근!

 

호준이 집으로 찾아왔다. 이번 훈련은 각자 떨어져서 지내는 바람에 보름 동안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물론 취사장에 식사 추진을 위해서 종종 내려와서 가끔 얼굴을 보기는 했다. 그러나 산아래 건지천 주변에 자리 잡은 취사장에 비해 중대인원들은 진지 공사를 위해 산중턱의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상황인지라 쉽사리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두 번째 경험이라고 서로 적당히 익숙해진 부분도 있고, 확실히 후임들이 늘어나다 보니 살짝 꼼수를 쓰는 부분도 있고...

 

진지 공사는 아무래도 신병급들은 주로 단까에 돌을 나르고, 중간 기수들은 돌을 캐거나, 떼를 준비하고, 고참들은 진지에서 돌을 쌓거나 떼를 입히거나 하는 식으로 임무가 묵시적으로 나눠져 있다. 그러다 보니 어중간한 중간 기수이지만 경력에 비해 경험치가 높은 4기들은 일이 좀 많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문득 일병을 달게 되었다. 훈련을 하나의 전쟁터라고 가정한다면 말 그대로 전장에서 일병으로 진급하는 꼴이다. 호준과 서로 일병 진급을 축하해 주었다. 목요일 출근하면 일병 다는 거다. 히히~~

 

호준이랑 비디오 빌려다 보고, 떠들고, 짜장면이랑 탕수육도 시켜 먹고, 잠도 자고 그렇게 하루 보냈다. 저녁 시간에는 같이 동네 산책하면서 사진 몇 장 찍었다. 일병 진급 기념! 잘 나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