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one/day by day

워크맨을 추억하며

rivervox 2024. 6. 9. 17:13

딩동 딩동 ~~

할아버지는 현관문을 여신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시더니 박스 하나를 들고 들어 오신다. 이윽고 삼촌을 부르신다. 박스는 삼촌에게 건네어졌고 삼촌은 그 자리에서 박스를 뜯는다. 그렇게 꺼낸 것은

Sony, Walkman

워크맨이었다.

 

삼촌은 너무너무 좋아했다. 옆에서 나도 덩달아서 좋아했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정확히 모른채.. 아마도 삼촌을 졸라 한 번 정도 헤드폰을 잠시 쓰고 소리를 들어봤을 것이다. 삼촌은 정말로 귀중한 보물을 모시듯 워크맨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서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 신기한 물건을 나도 갖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관심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음악을 무척 좋아하기는하지만 그 때는 아직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기 전이었다. 어렸다.

 

퇴근하신 할아버지는 차에 타라고 하셨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차를 타고 간 곳은 뉴욕제과였다. 강남역 뉴욕제과! 외할아버지는 먹고 싶은거를 고르라고 하셨다. 아마도 소보로빵 하나 정도 집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내 품에 빵이며 과자들을 잔뜩 담아 주시고는 당신이 또 이것저것 챙겼다. 어린 아이의 품이 얼마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의 뒷좌석에 빵이 가득했고, 집에 도착해서는 이 빵 저 과자 맛을 보느라고 그 날 저녁 매우 즐거웠다.

 

생각보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내가 실제로 처음 본 사람의 죽은 모습이 외할아버지였다. 입관식에서의 서늘한 공기가 기억된다. 가톨릭 의식에 따라 진행된 입관식에서 내 차례가 되어 관 안에 성수를 뿌려드리는데 성수가 잘 안나와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다시 워크맨! 이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등극한 것은 고교 시절이었다. 없는 살림에 언감생심 워크맨은 꿈도 못꾸고 "마이마이" 혹은 "아하" 만으로도 행복했다. 확실히 성능에서의 차이가 있었기에 여전히 워크맨은 워너비였다. 소니 혹은 아이와에서 나오는 워크맨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용산전자상가를 헤매며 10원이라도 싸게 사보려고 발악했다. 그렇지만 사실은 용팔이라고 불리우던 상인들을 이길 방법은 없었다. 싸게 샀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뒤끝은 찜찜했다. 확실히 나는 그 시절 내 용돈의 상당 부분을 용팔이 형님들에게 가져다 받쳤다.

 

워크맨을 생각하니 할아버지가 먼저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요즘말로 츤데레였다. 생김도 그렇고 말투도 그랬다. 어머니의 평을 따르자면 솔직히 "못됐다" 이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그닥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좋아 죽겠어요~~ 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편했던 것 같다.

 

나이를 먹은 만큼 주변의 사람들이 추억 속의 인물이 되는 경우도 많다.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고, 어떤 이유에서든 인연이 끊어져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개는 내 탓이다. 인연이 이어지지 않고,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는 대개 나의 잘못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새삼스런 반성이나 후회가 별 의미가 없을 지경이다. 그렇지만 부끄럽기는 하다. 내 부실함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이래저래 음악 듣기는 너무나도 편해진 세상이어서 더이상 워크맨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저 좀 더 나은 음질로 음악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은 여전해서 새롭게 진보한 워크맨에 대한 관심을 놓치는 않고 있다. 가격을 생각하면 별로 실용적이지 않은 욕심이고, 더군다나 평생 지나치게 사용해서 성능이 신통치 않은 내 귀의 물리적인 상태를 생각하면 더 나은 음질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워크맨, 할아버지, 뉴욕제과 그리고 음악들! 여전히 어제의 추억과 오늘과 그리고 내일의 희망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  하기는 희망마저 잃으면 뭐가 남겠어?

 

오늘 저녁은 삼겹살과 김치를 구워 먹으리라~~ 매우 희망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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