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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1990년 4월

rivervox 2024. 2. 13. 21:36

2024년 2월 1일 프롤로그

기록하기를 즐기다 보니 군 복무 시절 써놓았던 작은 메모들이 남아 있다. 그 일기장을 34년 만에 다시 꺼내어 읽어 보았다. 지난 30여 년간 아마 두어 번 정도는 꺼내어 봤으리라. 그러다가 오늘 다시 보니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세월 때문이려나? 무언가 정리가 필요한 상황 때문이려나? 나이 먹고 "라때는"이라는 말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이 더욱 아련하게 느껴진다. 힘들었지만 그립기도 하다.

 

18개월의 군 복무! 국방부 소속이지만 현역은 아니고 그렇다고 흔히 알고 있던 방위도 아니었던 시간! 전투 방위!! 남들보다 더한 고생을 했다고 할 것은 없지만 조금은 남다른 군 생활이었다. 훈련을 이야기하자면 30개월 복무하던 현역들의 훈련을 18개월 동안 다 치러야 했기에 녹녹치 않았다. 기본적으로 복무 기간의 차이는 다른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혜택임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고생했었다고 떠벌릴만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저 단순히 18개월 방위라는 말로 덮어버리기에는 제법 녹녹치 않은 경험들이 있었다. 수많은 군대 경험담이 존재하지만, 다른 경험을 한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로울 수도 있지 않으려나?

 

전투 방위는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었다. 부대 내에서의 공식 명칭은 단기사병이었다. 우리끼리는 그냥 방위라고 불렀다. 당시 수도권에는 전투 방위 부대로써 송추방위(72사단)와 금곡방위(73사단)가 있었다. 97년 정도에 마지막 방위도 사라지면서 기록 자체가 많지도 않지만, 그나마도 송추방위에 비하면 금곡방위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없는 것 같다. 부대가 다르면 경험했던 이야기도 다를 것이다. 나도 송추방위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우리와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불운한 방위라는 공감은 있었다. 복무 시절 군 행사로 인해 송추방위 병력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는 같은 시대의 젊은이였다. 그러나 그 안에서의 이야기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 육군 소속으로 전투 방위부대가 있었고, 그곳에서 나름 고생하며 최선을 다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병력 자원이 넘쳐나던 시절, 육군에서는 방위 소집 대상자들로만 구성된 완편 부대를 구상하였고, 그게 실현된 것이 전투 방위였다. 결국은 완편 보병 사단으로써 육군의 모든 정규 훈련과 작전을 수행해야만 했다.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걸로만 알았던 방위로써는 매우 불운한 운명들이었다.

 

20대의 우리는 어렸다. 어른인 줄 알았는데, 50대가 되어서 돌아보니, 참 어렸다. 병사들은 대개 20대 초반이었고, 하늘같이 높아만 보였던 소대장, 중대장도 겨우 20대 중후반이었다. 빛나는 청춘들이었지만 모두가 미숙했다. 그래서 때론 서로를 힘들게도 했고, 무섭기도 했고, 미쳐버릴 것 같은 일도 있었다. 좋아서 자발적으로 온 군대는 아니었지만 열심히 구르고 뛰고 훈련받았다. "나라를 지킨다"라는 작은 사명감을 가슴 한쪽에 담아두고 하루하루 이 악물고 버텼다.

 

육군 전체로 보자면 많은 숫자라고는 할 수 없었고, 지금은 육군 체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지만, 나에게도 한때 스무 살, 빛나고 소중한 청춘의 경험이기에 기록을 남겨 본다. 그 시절의 일기를 참조하고, 기억을 끄집어내어 적어 보는 기록이기에 오류는 있을 수도 있겠다. 매일매일 충실한 기록이었으면 좋았겠지만, 훈련도 많았고, 피곤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기록이 누락된 날들도 많다. 그러나 큰 물줄기에 발을 담그고 보니, 부분 부분 미처 기록으로 남기지는 못했지만 머릿속에 감춰져 있다가 떠오르는 기억들도 있다.

 

그런 기록과 기억을 글자 그대로 혹은 약간의 각색을 더해서 글을 올린다. 일종의 논픽션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맞춤법이나 표기법, 사용하는 단어 등은 지금과는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그냥 일기장에 기록해 둔 대로 틀렸으면 틀린 데로 남겨 둔다. 특히 요즘 사용하는 선임과 후임이라는 말은 우리 시대에는 없었다. 그저 원초적인 느낌 그대로 고참과 쫄병 (혹은 쫄다구) 뿐이었다.

 

분명한 점은 내가 겪은 일이라는 것이다. 내 바로 옆에서 함께 생활했던 동기와는 또 다른 나만의 경험과 느낌인 것이다. 그렇기에 같은 전투 방위 출신이라도 나와는 다른 경험, 기록 혹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잘못 알고,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수정하고 보완할 생각이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가명이다. 더불어 당연히 특정 인물을 비난하거나 고발하기 위한 기록은 아니다. 매우 개인적인 경험의 기록이다.

 

그렇게 나의 18개월간의 전투 방위로써 금곡에서의 군 복무는 1990년 4월 9일에 시작되었다.

 

1990년 4월 8일 일요일 맑음

믿을 수가 없네. 내일이 입대라니.. 뭐 방위니까 입대가 아니고 소집이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군대 간다.

 

정확히 일주일 전에 현역으로 입대한 윤철은 돌아오지 않았다. 입대 후 일주일 내에는 혹시라도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있다던데.. 그런 일은 역시 흔하게 발생하지는 않지. 30개월 꼼짝없이 현역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일 떠난다. 18개월이라 다행인 거야??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게 아니다. 내일 들어가는 부대가 전투 방위부대라고... 정말 다 된 밥을 죽 쑤고 태운 기분이라고... 여때껏 내가 겪어왔던 생활이 아닌 전혀 새로운 세상!

 

하아... 모든 것이 잘 되리라. 근거 없는 믿음!

 

여기저기서 위로의(?) 전화가 왔었고...

하느님 모두에게 축복을...

 

입대영장 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