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군에 관련된 드라마가 많이 나오더라.
제대로 정주행은 하지 않았다. DP 나 신병 등 워낙에 많이 회자되고, 쇼츠나 릴스가 뜨는 경우도 있다 보니 다 본 듯이 스토리를 알고 있기는 하다.
기억의 많은 부분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미화되어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불편한 기억으로 머릿 속에 남아 있는 부분들이 있다. 드라마 속의 군대는 그 이후 좀 더 나아졌을 내 후배들의 군대를 배경으로 함에도 '여전히 군대는 군대구나' 라는 느낌이다.
군복무 경험은 워낙 천차만별이고 각자의 특이점이 있다보니 백이면 백 모두가 색다른 것 같다. 누가 누구보다 고생을 더 했네, 아니네 하는 비교는 의미가 없다. 대한민국 남자에게는 선택지가 없는 의무 복무이기에 이 나라 절반의 국민들에게 나름 고통과 고난의 상처이며, 각자만의 소중한 기억과 경험이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없는 무조건의 강요된 군생활이 힘들지 않았을리가 없다. 몸이던 마음이던... 어쨌든 그 빛나던 우리의 20대,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20대에 군대는 늘 부담이었기에 아프고, 아쉽고, 아까운 것이다.
흔한 보병이었던 나의 군생활 동안 행군을 참으로도 많이 했다. 오죽하면 제대하면서 한 결심으로써는 우습지만 '앞으로는 단 1보를 움직이더라도 차를 꼭 탈 것' 이라던가, '절대로 등산은 하지 않을 것' 이라는 맘을 먹었다. 그만큼 행군의 기억은 시리도록 독하고 아픈 것이었다. 그 경험은 이제 완전히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몸과 마음에 기억되어 있다. 특히 모두 빠져 나가버렸던 10개의 발톱!
드라마에서 40키로 행군을 힘들다고 하는 모습을 보며, 40키로정도면 힘든 거리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행군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하나의 트리거가 되어 움찔하게 된다. 심지어는 북한 뉴스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단어를 들어도 가슴 속 한 귀퉁이가 시려온다. 이제는 그만큼 걸을 일도 없지만 그만큼 걷지도 못한다. 그런데 마음으로는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절에는 하루 일과 삼아 수시로 그 정도는 걸었으니까 40키로 정도는 적당한, 20키로라면 가벼운... 이런 느낌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40키로라면 9~10시간 정도는 걸어야 하니까 짧은 거리는 아니다. 난 이제 한 시간 걷기도 힘들 것이다. 최근에는 그렇게 걸어본 적도 없지만 10시간 동안 걸으라고 한다면 못한다며 뒤집어 질 것이다. 확실히 제대하면 무조건 승차.. 라는 결심은 잘 지켜온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고 하지만, 이제는 몸이 마음을 지배하는 나이인 듯 하다.
춘추계로 경험한 총 세 번의 200키로 행군, 그런 큰 행군을 떠나기 전의 준비 단계 동안의 행군, RCT, ATT, 유격 그리고 혹한기 등 큰 훈련 끝에는 항상 복귀 행군! 그렇게 남들보다는 짧은 군생활이지만 대충 2000 키로 정도는 걸었던 것 같다.
오늘 나는 그 기억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40키로 행군에 힘들어 하는 중대원들을 보며 놀라고, 40키로가 얼마 안된다고 생각한 자신에게 놀라고, 이제는 40키로는 커녕 1키로도 걷기 힘들 것 같은 자신에게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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