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7학번이다. 들어는 봤나? 그 영화 1987 할 때의 87이다.
반재수하여 88학번으로 다시 시작했지만, 어쨌든 꽃다운 스무 살을 1987년, 그 엄혹한 시절에 다 보냈다. 시위 주동자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의 시위는 마치 학과 수업처럼 일상이었다. 1980년부터, 아니 이승만 정권 때부터 시작된 그 항쟁의 역사는 1987년에도 현재 진행 중이었다. 매일매일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선배들에게 최루탄의 매운맛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비법을 전수받기도 했다. 물론 현장에서는 그런 비법 따위...
시위 중에 구속된 친구를 찾아 경찰서나 구치소를 헤매이기도 하고, 어디에 있다고 하면 어머니를 모시고 데리러 갔다. 교수들은 수업 중에 쫓겨 들어온 학생들을 가운데 책상에 앉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수업을 이어갔다. 매우 폭력적인 시대였다. 그러나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 다만 그 결과물로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어이없는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원인과 책임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분명히 트라우마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오늘 다시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보니, 다음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든다. 나는 좌우 구분 없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분명히 운서결은 대통령 "깜"이 아니었고 "급"이 아니었다. 현재의 국힘도 윤서결급에 머무르고 있다. 납득할 수 없는, 국민이 아닌 본인들의 밥그릇을 염려하는 집단으로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상태에 대한 해법은 민주당에 있다고 본다. 한 때는 홍준표에게 작은 기대를 걸었으나 최근 그의 행보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보수에서 이 상황을 탈피하고 납득할만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그 황당한 결말이 다시 반복될까봐 걱정이 된다. 피 흘린 항쟁의 대가가 다시 군부 출신 대통령의 탄생이었다니... 늘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의구심이 남아 있었는데, 결국 40여 년이 흘러 이런 결과가 나왔다. 도돌이표를 보고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법원을 습격하고 난 뒤 구속된 많은 수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기성세대로서 그들의 앞길을 밝히기 위한 무언가의 일을 제대로 해오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기도 했다. 한 편으로는 탄식을 하면서, 한 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이 무법 천지의 계엄 상황을 종료시키고, 탄핵 소추를 완성시키고, 잔당을 철저하게 응징해야만 한다. 내 손발이라도 잘라 내야 한다면 잘라 내야 할 것이다. 완전하게 뿌리를 뽑아야만 앞으로의 역사에 두 번 다시 이런 철면피들은 출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상황은 어지럽지만, 그 동안 숨어 있던 잔당들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좋은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힘 같은 것들은 위헌 정당으로 해산시켜야 한다. 도대체 전두환의 (전)사위가 국회의원이라니 웬 말인가? 도대체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어떻게 그 고귀한 보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제대로 된 보수가 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직 영화 1987을 보지 않았다. 보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영화 속에는 당시에 살았던 내가 모르는 비화들이 많이 담겨 있겠지만, 나는 그 610 항쟁에 이어, 629 선언에 이르기까지의 그 처연했던 역사의 순간들마다 흘렸던 눈물을 다시 대할 자신이 없다. 투쟁에 열심히 참여했던 사람은 아니지만, 그 숨 막혔던 매일매일을 생각하면 어쩐지 영화를 볼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아마도 이번 탄핵 인용이 제대로 마무리되고, 제대로 된 결말을 확인하고 난 뒤라야 볼 수 있을 것 같다.
끝까지 정신차리고 잘하자!
'book one > day by 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대유감, 조성모~~ (0) | 2025.02.01 |
---|---|
오랜만에 맥도날드에서 (0) | 2025.01.25 |
처참한 역사 (0) | 2025.01.03 |
탄핵 되다, 대통령 윤석열 (3) | 2024.12.15 |
박제, 역사의 순간 (0) | 2024.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