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의 목받침이 버티지를 못하고, 자꾸 뒤로 넘어간다. 오래되기는 했으나, 뜻밖의 고장이다.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르다보니 이래 저래 쌓이는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 고장 난 것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생활에 있어서 아주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면, 굳이 새롭게 사기보다는 그냥 불편한 채로 버티거나 약간 손을 본다거나 해서 계속 쓰게 된다.
한 때는 얼리어답터라는 말이 흥한 적이 있었는데, 나도 말 그대로 최신의 제품, 특히 전자제품이나 IT제품이 출시되면 참지 못하고 새로 사서 써보는 그런 인간이었다. 요즘은 테크전문가라고 불리는 것 같다. 특히 유튜브를 보면 다양한 이들이 활동 중이다.
나이가 들면서, 게으름이 일상이 되고,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라는 핑계는 나에게만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변화보다는 익숙함에 안주하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끼게 된다. 휴대폰조차도 S21을 아직도 쓰고 있건만, 굳이 신제품을 사야 할 필요성이나 당위성이 1도 없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배터리 지속 시간도 짧아진 것 같고, 화면 밝기도 좀 약해진 것 같고... 그러나 역시 내 일상 가동 범위를 생각하면 크게 바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고장난 것들을 그냥 버리지 못하고, 여기저기 쟁여 놓는다. 혹시나 나중에 다시 쓸 일이, 아니면 최소한 부품이라도 쓸 일이 있을 것만 같아서 버리지 못하니, 창고의 빈 공간이 점점 줄어간다. 몇 년 전에인가 작심하고 한 번 정리하여 버렸는데, 하필이면 그 일주일 뒤 정도에 그때 버린 고장 난 전기밥솥이 필요한 일이 생겼다. 무슨 실습용인지 분해용인지 필요한 일이 발생했다. 아니나 다를까? 괜히 버렸네, 하며 아까워했다. 그 이전 5년간 그저 쟁여만 놓고 있던 놈이었는데...
이메일조차도 20여년이 지난 메일까지 다 모아두고 있는 상황인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뭐 그냥 성격인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리 정돈은 잘하는 편이라, 깔끔하게 쌓아 놓았다는 점 정도...
요즘은 그렇게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기억도 정리하고, 회고하고 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이 부분은 나이를 먹은 탓인 것 같다. 대배우 박근형 선생님께서 이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았다고 생각하며, 본인의 사진이나 기록들을 정리하며 없애고 계신다는 인터뷰를 봤는데, 심히 공감이 되었다.
물로 그 분에 비하면 여전히 젊은 나이라고 하겠지만, 50 중반에 들어서니, 무언가 삶의 행보에 있어서 다른 기류를 느끼고 있다. 아니할 말로 내일이라도 당장 어찌 될지 모르는 사람 목숨이며, 그럴만한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기에 한 번씩 추억을 회고하면서, 정리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역시 정리벽이 좀 있는 성격인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무언가 새롭게 늘리기 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충분히 더 활용해 볼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물론 오늘 우연히 SNS에서 7학년이라는 어느 형님이 멋진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진을 보며, 나도 좀 더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우고 노력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자꾸 더 욕심을 부리면서 새로운 것을 탐하는 것보다는 가진 것 중에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을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예전에 구입했지만 끝을 보지 못한 영어 서적들이 많아서, 너무 많은데,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영어 교재는 구입할 필요가 없겠다.
있는 거나 잘 쓰자고. 의자 목받침은 결국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서 고정시켜 놓았다. 생각보다 든든하다. 메쉬로 방석과 등판이 제작된 거의 초창기 제품이어서 10여 년 전에 꽤 비싸게 구매했다. 당시에는 나름 최신 기술이라고... 역시 세월은 못 속이고 여기저기 소소한 고장들이 생겼다. 목받침이 결정타가 될 뻔했는데 잘 손 봤네. 업체가 망해버려서 돈 주고도 A/S는 받을 수가 없으니 이 정도로 최선이다. 그래도 손보고 나서 결과는 매우 만족스럽다.
줄이고 버리려는 미니멀리즘의 꿈 하나를 오늘도 실천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허먼 밀러에 한 눈 팔고 있다.
'book one > day by 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빵 (0) | 2025.02.23 |
---|---|
묘망(渺茫)/조지훈 (0) | 2025.02.14 |
80년대 영어 학습의 추억 (0) | 2025.02.10 |
시대유감, 조성모~~ (0) | 2025.02.01 |
오랜만에 맥도날드에서 (0) | 2025.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