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one/army

3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9월 28일

rivervox 2024. 9. 28. 00:00

1991년 9월 28일 토요일 맑음 0000

18개월의 군생활을 마치는 지금, 시원 섭섭합니다. 힘들었던 시간을 떠나보냄은 시원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알게 된 많은 사람들과 헤어져야 함이 섭섭합니다. 18개월 동안 내가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난 여러분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낍니다. 특히 2소대 화기분대원인 영재, 인해, 영길, 훈근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고참으로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는데 분대원 여러분들은 내게 너무나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소대 및 중대원분들 함께 해주셔서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 모두 각자 제대하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무사히 잘 버티다가 제대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 빨리 가주는 것과 인내하는 것일 겁니다. 장담컨데 국방부 시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돌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1991년 9월 29일 일요일 맑음 2250

제대 후 첫 날! 새벽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동기들과 함께 걸어서 부대 정문을 나설 때의 흥분감이 아직도 살짝 남아 있다. 우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빠른 걸음으로 사단을 가로질러 정문을 통과했다. 환호했고 포옹했고 격려했다. 어차피 조만간 만날 테니 거기서 각자 집으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헤어졌다. 나는 호준과 함께 잠실로 이동했다.

 

저녁에는 동대문까지 나가서 소대원들과 제대 회식을 했다. 이병들이 원하는 대로 따랐다. 살다가 그 동네에 가서 놀아본 경험은 처음이다. 도대체 이 친구들은 무슨 일을 하다가 온 것인지, 기상천외한 장소로 나를 데리고 갔다. 

 

지금도 현실감이 없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대단히 좋을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저 일상의 어느 한순간에 잠시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입대 전 멈추었던 시간이 이제 다시 흐르는 느낌이다. 이제 어디로 갈까?

 

1991년 9월 30일 월요일 흐림 2345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하고, 호준을 만나 이곳저곳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먹고... 

 

막상 제대 당일은 각자 소대에서 회식을 하느라 정작 동기들 간의 모임은 할 수 없었다. 물론 앞으로 수시로 만날 예정이기는 하다. 제대 기념 반지를 제작하기로 했다.

 

감기와 군기는 적대 관계인가? 제대하자마자 감기가 들어왔다. 그 감기마저도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로써 나의 91년 9월은 완전히 끝났다.

 

2024년 9월 28일 토요일 맑음 0000 에필로그

정확히 34년 전의 일이다. 공교롭게도 34년 전의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그전에도 그 후에도 수많은 토요일을 지났지만 그날과 같은 토요일은 없었다.

 

당시의 감정은 글자 몇 개로만 남아있지만, 날아갈 듯했던 상큼한 느낌만은 아직도 어제일처럼 기억이 난다. 상황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군복을 입은 기간은 18개월에 불과한데,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결국 그 끝 날이 왔다는 사실이 전혀 실감 나지 않았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부대를 가로질러 위병소를 통과한 기억이 있다.

 

30개월의 현역 복무도 있던 시절에 18개월 방위 복무가 뭐 대수이겠는가? 전투방위의 존재를 인지하고 고생한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는가하면, 그래봤자 방위지라고 우습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다. 솔직한 생각은 전투방위를 할 바에는 현역을 갈걸..이라는 것이었다. 어쨋든 국방부 소속으로의 군생활이니 절대 무사태평할수는 없었다. 다만 무슨 고생을 하더라도 "출퇴근" 한 마디면 게임은 끝나버렸다. 20세기 현역 내무반 생활의 혹독함을 인정한다면 방위라고 무시하는 일 정도는 감수하리라. 그렇다고 절대 쉽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굳이 전/투/방/위/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군복무는 돈주고도 하지 못할 귀한 경험이었다. 대단한 자부심이나 애국심, 이런 것들은 없었던 것 같다. 때가 되어 입영 영장이 날아오고, 지정일에 입대를 했고, 시키는데로 훈련을 받고 버텼다. 제대를 하는 날조차도 제대하라는 명령에 따라 시키는 대로 한 것이다. 자유의지는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아들을 낳게 된다면 군대를 안 보낼 수 있다면 안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하였다. 십 여년 후 정말로 내게 아들이 생겼고 그 아들조차도 지금은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다.

 

한 세대가 흐른 것이다. 나라가 선진국이 될만큼 발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군에 대해서는 그때만큼이나 부정적이다. 그 비효율성과 폐쇄성! 34년 동안 사실상 바뀐 것은 없는 것 같다. 문제는 권력자들이다. 의무에 따라 매일 입대를 하고, 매일 전역을 하는 그 수많은 우리의 귀한 젊은이들은 당연히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때 우리의 선배들이 했던 못된 짓을 이제 그 선배의 자리에 앉게 된 우리들이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 그래서 행여라도 우리의 귀한 아들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부모가 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 그래서 군복을 입고 있는 아들들을 보면 마음이 애틋하다.

 

34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읽는 동안, 나는 다시 그 시절의 금곡 방위, 전투 방위가 되었다.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심적으로 가졌던 고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지금만 버티자라는 심정으로 버텨내던 그 기억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기억과 열정들이 다시 떠올랐다. 다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 나쁜 것만도 아니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희망 아닐까? 이 고통을 이겨내면 좋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 그래서 이 악물고 버텨보는 용기! 스무 살의 군인은 참 어렸다. 성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는 것도 없는데 아는 체 했고 어리숙했다. 그러나 씩씩했다. 나이 먹고 잃어버리는 감정 중의 하나가 그런 용기와 씩씩함! 여기에 일기를 다시 정리하며 그 감정의 결들을 천천히 하나씩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잘 버텼구나.

 

삶은 여전히 그렇게 잘 버텨야 한다. 이제는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적게 남았겠지만, 여전히 삶은 거룩한 죽음을 맞는 그날까지 열심히, 잘 버텨야 한다. 군복무 시절에는 그보다 더한 고난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어찌 그렇겠는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수많은 시련과 고난! 그러나 극복해야 했고 버텨내야 했다. 여전히 오늘도, 그리고 남은 삶도 그럴 것이다. 다만 좀 더 여유롭고 슬기롭게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세상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했던 군복무동안 배웠던 경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버티는 능력은 그때부터 제대로 배운 것이다.

 

나이 먹고 보니 참으로 그 젊음이 그립다. 억만금을 주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그 젊음이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가서 입대하겠냐라고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군대가 존재하는 그 고귀한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참 쉽지 않을 것 같다. 이기적으로 말하면 상병 달고서부터 시작이라면 그때는 해볼 만할 것 같다.

 

그래, 이제는 지나간 세월이다. 돌이킬 수 없다. 마음 속에 그 귀한 기억과 경험을 담아두고 그냥 살아갈 일이다. 앞으로 과연 이 일기장을 다시 꺼내볼 일이 있을까? 충분한 것 같다. 다만 세월이 흘러도 몸에 새긴 문신처럼 군복무 경험은 그렇게 남아 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소중하다. 그 시절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그 시절 인연이 되었던 사람들도 모두 소중하다. 

 

동기들과는 여전히 연락 중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 길이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 시절의 고마움이 그대로 남아 떠오른다. 혹시 가능하다면 만나보고 싶다. 동화의 마무리처럼 "이후로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였으면 좋겠다. 내 인생 정수의 시기에 볼꼴 못볼꼴 봐가며 함께 견뎌내준 그들이었기에 한 번 정도는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이렇게 소중한 하루를 또 살아 본다. 몸은 늙어가고 있지만 마음만은 그 때의 열정을 기억하며 열심히 살아본다. 언제인가는 만날 수도 있겠지 라는 희망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