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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1990년 7월

rivervox 2024. 4. 19. 16:00

1990년 7월 1일 일요일 맑음 2255

날씨가 무척 좋은 하루였다.

 

좋은 것은 날씨뿐, 언제나 일요일은 빠르게 지나간다.

 

초중고 시절 늘 스포츠형 머리였고 헤어스타일에 크게 관심도 없고 스타일링도 귀찮으니까 짧은 머리가 편했는데... 그건 내 마음이 그렇게 하고 싶을 때의 이야기이고, 막상 규정에 따라 몇 미리의 짧은 머리로 규제를 받고, 고참들의 감시를 받으니 머리 길이에 더 집착하게 된다. 특히 출퇴근을 하는 방위들은 머리 길이에 더 민감한 것 같다. 고참들은 1미리라도 기르고 싶어 하고 간부들은 매의 눈으로 살핀다. 혹시라도 수송버스를 놓치게 된다면 헌병애들까지도 참견을 한다. 

 

이제 겨우 3개월 차인 이등병에게 중요한 것은 짧은 머리! 알아서 미리미리 준비한다. 이발사 아저씨마저 뭐 깎을 것도 없는데 왜 깎냐라고 했지만 그분은 모른다. 내 속사정을... 작대기 하나의 이등병의 머리는 늘  속살이 비칠 듯한 짧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완전 삭발은... 또 다른 고난을 불러올 것이다. 반항이냐?

 

적당히...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서 머리 깎고 목욕하고 잠을 자고... 어느 새 습관이 되버린 데로 군복을 다린다. 일요일이 지나간 것이다. 군복에 줄을 잡는 동안 많은 상념이 오간다. 아 싫다.

 

그래도 내일의 출근을 기다린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버텨보자.

 

덥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헛된 희망!

어느새 7월! 여름 꽝꽝이다.

 

1990년 7월 4일 수요일 흐리다가 갬 2105

어제 밤은 야간 사격!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정시 퇴근은 글러 먹었다. 차라리 영내대기가 낫겠지만 굳이 퇴근을 시킨다. 그 늦은 시간에... 젠장! 아마도 식수 인원을 하나라도 줄여야 하는 입장도 있기 때문이겠지. 야간 사격이 있고 그 다음 날은 참으로 피곤하다. 그 상태로 또 주간 사격이라니...

 

야간 사격은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기 인 것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30미터인가 앞에 놓인 표적을 맞추라는 것이다. 표적이 있다고 생각되는 어둠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보고 있다 보면 정말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십 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뚫어져라 바라보다 보니 머릿속에서 그려낸 표적인 것 같다. 확인하면 역시 0발!! 혹시 맞아 있더라도 정말 내가 맞춘 것일까 의심하게 된다.

 

암순응 과정을 거치더라도 안 보인다. 나는 안 보인다. 눈이 나쁜 것도 아닌데 잘 안 보인다. 뭐 나만 안 보이는 게 아니니까.. 고참들도 안보이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격 후 모두들 멋쩍은 표정으로 사선에서 내려온다. 고참들은 더 욕을 먹는 것 같다. 짬 먹고 그것도 못한다고... 그러나 이게 정말 훈련으로 개선될 것인지 모르겠다. 훈련하면 나아진다고 하니 믿어야겠지.

 

1 소대장님이 이런저런 요령을 알려주며 압박을 하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사격 전에 후레쉬로 표적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지만 조명이 사라지면 그저 깜깜이다. 표적 뒤의 언덕배기만 더 높아진 것처럼 보였다. 달빛이 별 것 아닌 거 같은데 확실히 달 밝은 밤과 그렇지 않은 밤의 차이는 매우 컸다.

 

보름이 가까운지라 어젯 밤에는 제법 표적의 형태가 인지가 되더라. 달빛 아래에서의 사격은 뜻밖의 운치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모든 감각은 더 예민해지는지라 화약 냄새는 더 진하게 느껴지고, 총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내가 미쳤나 보다.

 

내일도 사격이다. 뭐 매일 사격이다.

조금만 참고 견디며 토요일을 기다린다. 제대를 기다린다.

군대의 시간이란...

 

1990년 7월 10일 화요일 맑다가 비 2340

오늘 미션 나름 클리어!

 

역시 지속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늘기는 느는구나. 사격을 계속하다 보니 이런저런 요령도 생기고 늘기는 한다. 조준을 할 때는 표적의 하단을 조준하는 편이 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 이래야 훈련의 보람이 있겠지. 그나저나 사격 평가에 뽑히지 않기를...

 

사격 훈련은 사실 기다리는 시간이 거의 전부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몸은 덜 피곤할 수도 있다. 사격장까지의 도보 이동, 대기하면서 고참들 눈치보기는 좀 피곤하지만... 그래도 사격장에서의 군기란 그 경계 수치가 최대치로 올라간다. 삐끗하면 누구 하나 죽어나갈 수도 있다. 그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대대 병력이 한꺼번에 하는 훈련이니까 사격장에서의 대기 시간도 만만치가 않다. 중대별로 소대별로 분대별로 그늘을 찾아들지만 하루 종일 있다 보면 태양의 각도도 바뀌게 되고 그늘은 다 사라지고 뙤약볕 아래에서의 대기! 대기! 대기! 긴장을 늦추지 말고 대기!

 

오후에 비가 오기 시작해서 뛰다시피 부대 복귀!

 

1990년 7월 11일 수요일 흐리고 비 2135

시간을 아껴야지. 퇴근 후의 귀한 시간들!

열심히 살아야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비가 더 왔으면 좋겠다. 비가 오는 바람에 오늘은 실내에서 하루 종일 버팅겼다.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총기 수입을 정성껏 하고, 중대 막사 물자들 정리 좀 하고...

 

그렇게 하루 잘 버텼다.

 

1990년 7월 12일 목요일 맑음 2156

시간의 흐름이란, 어느 때인가는 길고 지루하게, 어느 때인가는 순식간에 흐르는 느낌이다.

 

이등병의 시간은 여전히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아득하게 남은 세월이다. 끝은 보이지도 않는다.

 

맑은 날씨에 예정대로라면 사격장으로 이동하던, 전술 훈련을 할 판이지만...

놀라운 뉴스가... 우리의 동병상련!! 송추 방위, 72사단에서 무더위 행군 중에 일사병으로 3명이나 사망했다고 한다. 그것도 지난 월요일 발생한 사고가 오늘에서야 전파되었다. 덕분에 혹서기 훈련 지침이 새롭게 발휘되어 인사병이 아침에 온도체크를 하고 난리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31℃가 기준선인 모양이다. 그 이상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누군가의 죽음 덕분에 오늘 하루 이렇게 보내게 되는구나. 그나저나 그 친구들은 어쩌고, 부모님들은 어쩌냐? 상상이나 했겠어. 방위가 훈련 중 사망이라니... 아침에 인사하며 출근했던 아들이 저녁에 주검이 돼서 돌아오다니... 아 새삼스럽게 내가 얼마나 빡센 상황에 처했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하기는 사격 측정만 아니었다면 우리도 뙤약볕 행군을 했을 것이다.

 

어쩐지 중대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또래의 죽음에 대한 뉴스는 무언가 마음속에 응어리를 만드는 것 같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죽었을 수도 있는데... 죽은 자에 대한 아무런 추모도 없고, 마음속의 위로를 담아 보낼 시간도 따로 없다. 그저 남의 일처럼, 없던 일처럼...

 

사실 더운데 에어컨도 제대로 없는 막사에서 선풍기만 켜놓고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다. 드문 일이지만 오늘은 사단 내에서 그늘을 찾아다니며 교육 실시! 보통은 출근 점호 후, 사단 후문을 통과해 주변 교장으로 이동해서, 야전에서 교육을 시행한다. 그러다가 한 따까리도 하고, 장기 자랑도 하고.. 그러기에 부대 내에서 하루 종일 머무르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뭐, 그냥 잡소리만 난무했다. 마음은 마음대로 심란하고 더우니까 교육이 제대로 될 리도 없고...

 

1990년 7월 13일 금요일 흐림 2059

한 달여간의 훈련이 무색하게 사단 사격 측정은 4대대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시험이라는 것은 어쨌든 부담스러우니까, 다행이다. 4대대 화이팅! 잘해서 전부 포상휴가 가랏!!

 

나는 좀 더 견디고 버티기로 하자. 어차피 스스로가 겪고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 결코 내가 아닌 남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소용없는 일이다. 언젠가, 91년 9월 28일, 내게도 그날이 올 것이다. 이 악몽에서 깨어날 날이 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매일, 거의 매일, 아니 종종, 아니 자주 사랑하는 가족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행복이냐고..

 

나랑 비슷한 시기에 입대한 중대 현역, 최 이병이 나를 은밀하게 찾았다. 중대 인원 120명 중에 현역 사병은 5명 정도이다. 인원이 적어서 편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결국은 고참과 24시간 함께 하는 내무반 생활이 문제다.

 

솔직히 우리 부대 현역은 나름 꿀보직인 듯 하다. 워낙 적은 인원이라서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고된 훈련이란 훈련은 모두 방위 위주이다. 결국 쪽수에서 밀리는 바람에 제대로 대우를 받지는 못한다. 일과 중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 안중에 그들은 없다. 그저 1년 짧은 복무 기간과 퇴근이 위안거리이다.

 

최 이병은 박 병장 눈을 피해서 나에게 편지를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그 정도야.. 뭐.

 

어쨌든 나는 오늘도 5시에 퇴근했다.

 

1990년 7월 14일 토요일 비 2043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면 싫으면서 좋다. 비가 내리면 분위기가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싫지만 사실 하루 일과가 좀 가벼워지는 면이 있어서 좋다.

 

물론 계획된 훈련이 진행 중이라면 비가 오는 날씨가 큰 짐이겠지만, 오늘처럼 지난 한 달간의 고된 시간을 보내고 마무리하는 날의 날씨로써 비는 좋은 것 같다.

 

어영부영!! 그렇게 12시 만을 기다리며 막사 청소나 하면서 반나절 일과 잘 마쳤다.

어쨌든 비야 오늘은 고마웠어. 올여름에는 비가 참 많이 오는 것 같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하다 하다 비 눈치까지 보는구나. 그래도 앞으로 나흘간... 기쁘구나!!

 

1990년 7월 15일 일요일 흐림 2152

무척이나 장마가 길다. 

 

이렇게 덥고 지루한 여름 날씨에 헨델의 수상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도 퇴근하는 방위의 삶이라서 가능한 거겠지. 뭐 퇴근 못하는 날도 적지 않지만 어쨌든 난 지금 이 시간 퇴근해서 이렇게 음악을 들으니 좋다.

 

수요일까지 정비다. 공식적으로 또 하나의 훈련이 마무리되었다는 말이다. 입대 3개월 만에 무거운 훈련 두 가지를 마쳤다.  3개월 동안 집에서 잠을 잔 날이 한 달 정도 인가?

 

그래도 맘대로 음악 듣고, 책 읽고... 친구들을 만나려고 했으나 다 군대 가서 거의 없구나. 그냥 중대 동기들이나...

 

1990년 7월 17일 화요일 비 2340

아직도 하루가 더 남았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어느새 입대한 지 100일째란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간다. 꽤 보낸 거 같지만 여전히 많이 남았다. 겨우 3개월 지나갔고,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15개월이 남았다. 아직도 버텨야 할 인고의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다. 필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

 

공부 좀 해야지 싶은데, 단 3개월 만에 머리가 되게 망가진 것 같다. 원래 안 좋았던 건가? 살아오면서 머리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1990년 7월 18일 수요일 비 오거나 흐림 2202

정비 마지막 날!

 

마음이 부담부담! 정비라는 것이 참 쉴 때는 좋은데 마지막 날이 영 죽을 맛이다. 누가 그랬지! 휴가복귀할 때 그런 심정이라고... 매일 부대를 들락날락한다는 점이 이런 면에서 안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퇴근을 선택하겠지만...

 

극복법은 좋은 거만 생각하기!

부대에서의 일과가 그리 견디지 못할 것만은 아니지. 더러 재미있는 일도 있잖아.

더욱 좋은 뉴스는 이틀만 버티면 또 주말!!

주스 한 잔 마시고 자자!

 

좀 덥지나 않기를...

 

1990년 7월 20일 금요일 흐리다가 저녁 늦게 비 2025

군장을 메고 연병장을 돌 것! 

 

출입증을 분실해서 신고하고 거창하게 보안 교육을 받았다.

만약 간첩이 내가 분실한 출입증을 습득해서 사진을 바꿔 치기하고 부대에 진입하면 어쩔 것이냐는 것이다. 뭐, 이론적으로는 그렇기는 한데 어느 미친놈의 방위가 퇴근했는데 자진해서 부대로 출근하겠냐고... 그까짓 출입증이야 굳이 줍지 않더라고 위조하려고 하면 전혀 어려울 일도 아니지.

 

분대장인 윤 상병님은 갈굼도 조금 있었지만 위로를 투척한다. 입대 3개월짜리 이등병이 감히 출입증을 잃어버려서 더 호되게 당한 것이라고... 고참이라면 인사병과 알아서 적절한 대처가 가능했겠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잘못한 일이다. 잃어버리면 안 되는 군사기밀을 잃어버린 것이니까... 결국은 스스로 자책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하루가 종결되었다.

 

그래도 연병장 뺑뺑이 돌고 오니, 불쌍하다고 하루 터치 안 하고 놔두더라.

 

나 화났어. 나를 뺑뺑이 돌게 한 중대장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돌아오라 나의 출입증! 그러나 이미 새로운 놈으로 신청 들어갔다.

 

1990년 7월 21일 토요일 흐리는 가운데 때때로 비 2005

어서 오라. 나의 마지막 날!

가다림,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1990년 7월 22일 일요일 흐리가다 해 뜨다가 2101

어김없이 일요일 밤이다.

어김없이 군복을 다리면서 어둠을 맞는다.

 

과연 언제쯤 일요일 밤이 두렵지 않을까?

에잇 몰라, 방위의 특권을 누리자. 별밤 공개방송이나 듣자.

내일 염려 내일 하라!!

 

1990년 7월 23일 월요일 비 흐리고 2006

0500 기상! 앞 집에서 웬 음악 소리가 들린다.

가락시장 앞으로 돌진!!

 

사람들은 이 버스가 소위 수송버스라는 것을 모르겠지. 그저 멀리 짧게 깎은 남자애들이 잔뜩 실려있는 모습을 보며 갸우뚱하겠지. 아니 별 관심도 없을 거야. 상상도 못 하겠지.

 

아침 출근길의 수송버스는 작은 소리의 충용 구호로 가득하고 은근 긴장된 분위기이다. 그리고 졸음 가득!! 그에 비하면 퇴근길의 수송버스는 조금은 해피무드이다. 무언가 약간 나른하고 느슨하고 에너지 준위가 살짝 높다.

 

나는 매일 아침에 죽고 저녁에 살아나는 방위다.

 

1990년 7월 24일 화요일 비 2008

아이 피곤해.

 

물자분류 교육! 전쟁이 나면 우리는, 나는 전장으로 가야 한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전장은 아니다. 내가 죽을 곳은 강원도 철원의 어느 산자락! 죽을 듯이 200킬로를 행군해 가서, 이미 파놓은 나의 무덤이 될 집결지에서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다. 내가, 우리가 그렇게 죽어가는 동안 후방에서 준비가 된 다른 사단이 우리가 버티고 있던 그 진지를 넘어서 북으로 북으로 향할 것이다. 이기고 돌아오라! 가능하면 통일을 시키던지... 아무리 재봐도 그 와중에 내가 생존할 확률은 거의 제로인 것 같다. 위에서 내려오는 놈들에게 처맞던 밑에서 올라오는 놈들에게 깔리던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다. 잔인하군. 군번줄은 꼭 걸고 있기로 하자.

 

죽을 때 죽더라도 나는 오늘도 퇴근 버스를 탔다.

 

1990년 7월 26일 목요일 비도 오고 흐리다가 장마의 끝 2123

진도개 발령, 비.. 비상이닷!

 

오늘은 0300에 기상하여 0400에 출근 버스를 탔다. 이미 예고된 훈련이었지만 참 피곤하다. 한 달간의 사격 훈련으로 밤낮없이 사격장을 헤매느라 퇴근도 제대로 못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는 0300에 출근을 시킨다. 그럼 뭐 하러 퇴근을 시키냐? 하기는 어차피 잠도 못 잤다. 혹시나 하는 긴장감으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지각하면 죽음이라는 선임들의 경고는 지난 일주일간 끊임없었다. 미출근은 곧 탈영이니까...

 

현실적으로 그 시간에 출근 버스를 놓친다면 다른 대안도 없다. 택시? 걸어서? 아님 부모님 찬스? 온 가족이 뭔 고생이냐고...

 

전쟁이 발생하면 내가 죽을 곳으로 떠나기 위한 준비태세 훈련!! 지난 일주일간 교육받은 데로 물자분류를 실시한다. 말 그대로 신속정확 해야 한다. 빠르지만 틀림이 없이... 사실 교육받는 동안에도 많이 깨졌다. 그 많은 중대 물자를 연병장까지 날라야 한다. 단 적재, 파기, 후송, 방치에 따라 정확하게 지정된 적재 물자만 날라야 한다. 물론 일부는 실물이 아닌 카드로 대체되기는 하지만 어쨌든 실탄 수령하려고 산 중턱의 그 탄약고까지... 군장은 어제 퇴근 전에 이미 잘 싸두었지만 군장이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1년 365일 늘 잘 꾸려서 준비해 놓는 군장이다. 그저 잽싸게 달려야 한다. 문제는 내 달리기는 그닥 빠르지 않다는 것!

 

무언가 되게 어려웠다. 교육을 받았지만 실전에서는 어리버리.. 신속정확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니... 고참들의 고함과 욕설이 난무했다. 그런데 사실 그럼 고참들조차도 익숙지 않은 듯했다. 시키는 것만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는 고참에게 욕먹고 고참은 간부에게 욕먹고.. 간부는 연대장으로부터?

 

그렇게 연병장에 집합한 인원들! 연대장의 훈시와 더불어 훈련 종료가 되었다. 평소라면 아직 하루 일과가 시작도 되지 않았을 시간이었다. 모처럼 부대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대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 경험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군대밥으로 삼시 세 끼를 다 먹는 경우라면 대개는 훈련 기간이니까 야전에서 먹게 되는데, 대대 식당에서의 아침 식사는 훈련소 이후 처음이다. 

 

식사 후 연병장에 모아둔 물자들을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가져다 놓는 것도 큰 일이었다. 모처럼 텅 비어진 중대 막사 구석구석 청소를 먼저 하고... 남자들만의 모여 있는 공간의 쿰쿰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고 노력했으나 아마도 잠시뿐이겠지.

 

거의 밤샘하고 출근하다시피 한 거라 모두가 해롱거린다. 오후에는 영내에서의 정비 시간이 주어졌다. 모두들 내무반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지만 이등병 찌끄래기가 함부로 티 나게 그럴 수도 없는 법! 소대별로는 PX를 다녀오기도 했다. 나도 분대장님을 따라서 사단 PX를 또 구경해 봤다. 뭐 구멍가게지만 사회보다는 싼 맛에... 같은 먹을거리인데도 왜 군복을 입고 먹으면 더 맛있는 걸까?

 

그래도 퇴근은 정시 퇴근이었다. 보통은 퇴근버스는 시끌시끌하지만, 오늘은 모두 피곤한지 버스 안이 고요했다. 

내일은 정시 출근!

 

1990년 7월 27일 금요일 가끔 비

어제 준비태세 이후, 미처 정리가 덜 된 물자들을 정리하며 하루 또 보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갔다.

7월이 가고 있다.

 

1990년 7월 30일 월요일 맑음

섭씨 35℃! 여름이다.

 

사실 더위를 느낄 세도 없이 하루하루 지냈다. 아침에 인사병이 35℃라고 고지하니 그제야 새삼스럽게 지금은 여름의 한가운데임을 깨달았다.

 

2기 중의 6개월 복무인 방위가 오늘 제대했다. 말로만 듣던 육방의 위력!

아무것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가면 된다. 나의 18개월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하~~ 부럽다.

 

1990년 7월 31일 화요일 맑음

월급 5000원

 

생맥주 한 잔이랑 가벼운 안주 가능하다. 나의 한 달 벌이! 스스로 비하하지는 말자.

 

아니 그래도 하루 왕복 수송버스가 1000원인데 너무 한 거 아니야. 게다가 난 담배도 피우지 않는데 담배 15갑은 왜 주냐고! 알아서 처분하라는 거임? 팔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소대원들에게 골고루 무상 분배했다. 소대 흡연자들은 지난달부터 갑자기 생긴 행운에 행복해한다. 모두들 당연한 듯 중대 인사계에게 담배를 받아 나오면 알아서들 분배한다. 애정 어린 눈길 좀 받아보는 시간이다.

 

나도 담배 좀 배워볼까? ㅎㅎ

 

와 또 한 달이 지나갔다.

 

동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