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는다
어쨌든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나에게는 취미였고, 생계였다. 한편으로는 생계가 된 음악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온 세월, 나는 오늘 다시 음악을 듣는다.
한 때는 없는 살림에 돈 아까운 줄 모르고 마냥 돈을 쓰기도 했다. 오디오 기기는 욕심부리기 시작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으며 워낙 고가이기에 애당초 포기하였지만, 카세트테이프, LP 그리고 CD를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수입 내에서만 할 수밖에 없기에 늘 아쉬웠다.
요즘은 디지털 음원이 대세가 되면서, 음악을 듣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해졌다.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음악을 쉽게 접할 수가 있다. 음악을 듣는다는 결과만을 본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음반을 구매하여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달려와 플레이어에 음반을 올려놓고 첫 음을 기다리던 그 감성까지를 음악을 듣는다라고 한다면 현재의 음악을 듣는 행위는 너무 저렴한 행위가 되어 버린 느낌도 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저 구실일 뿐이다. LP에서 CD로 넘어가던 그 시절에도 이런 류의 불만은 있었다. 분명 CD는 음악을 듣기에 더 편리하고 음질로 보면 더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감성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투덜거림은 당시에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시대의 흐름대로 흘러갔다. LP는 점점 사라져 갔고, CD가 대세가 되었다. 상대적으로 일본보다는 그 진화의 속도가 느렸던 우리나라였기에, 90년대 후반 일본의 LP 애호가들이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LP를 구매하는 것이 화제가 되어 뉴스에 나오기도 했었다. 나의 마지막 추억은 종로 3가 YBM빌딩 지하에 있던 '뮤직랜드'에서 LP를 구매했던 것이다. 어떤 앨범이었는지는 명확히 기억을 못 하지만 확실히 그 기억 이후로는 CD였다.
시간이 흐르며 레트로가 유행하면서 LP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물론 대세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매니아적인 현상인 것 같다. 이제는 LP를 대량 생산하는 곳도 없고, LP가 음악을 듣기 위함보다는 하나의 컬렉션이 된 것 같다. 나에게는 100여장의 LP 가 있다. 대략 90년도 전후부터 LP를 사들이기 시작했으니, 30년은 넘은 것들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소리를 내주더라.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면 스토리가 없는 음반이 없다. 내가 처음 샀던 음반! 입대하기 직전에 샀던 음반! 등등 이런저런 사연들이 하나씩은 떠올려진다.
그 시절의 수많은 노래 중에 이 곡을 생각하면 꼭 동반하여 떠 오르는 저 곡이 있는데, 조졍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와 박준하의 '너를 처음 만난 그때'이다. 발표 시기는 3~4년 차이가 있지만, 30여 년의 세월 속에서는 거의 비슷한 시절의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그 둘의 LP가 있다. 오늘 굳이 시간을 내서 듣는다. 생각보다 훌륭한 음질에 감동을 받는다. 이 음반을 구매했던 시기는 대학생활 초반과 군복무가 겹쳐지는 대혼란의 시기였다. 참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살다보니 시간이 없어서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던 때도 있었다. 음악이 생계가 되었을 때는 처음에는 즐거웠으나 갈수록 고통스러워졌다. 음악을 음악으로만 듣지 못하고, 이런저런 계산과 평가를 붙여가며 듣는 행위가 힘들었다. 그것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사실 조금은 사치스러운 행위이다. 그저 BGM 처럼 틀어놓고 작업을 하거나, 공부를 할 수도 있지만,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행위이다. 사람에게 중요한 많은 것들 중에 첫손가락에 꼽을 만한 것이 시간이다. 그 시간을 들여서 집중하여 "음악을 듣는다." 참으로 고결한 행위인 것이다.
나는 오늘 음악을 듣는다.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앞으로의 꿈을 꿔보기도 한다. 그렇게 행복해한다.